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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0. 2021

시 읊고 싶은 날, 시집 들고 다니고 싶은 날

-이경선 시인의 <그대, 꽃처럼 내게 피어났으니>를 읊으며-


아내가 딸아이 책을 사는데 나에게도 사고 싶은 책이 있냐고 물었다.

서점에 가본 지 꽤 되었다.

책값이 만만치 않게 나가고 있었는데 형편상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전자도서관도 규모가 커져가고 있고 한 달에 1만 원 정도만 내면 실컷 골라볼 수 있는 전자책 플랫폼도 있으니까 요즘은 주로 그렇게 책을 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종이책의 감성을 전자책이 따라잡을 수는 없다.

책장을 덮고 나서의 기억도 종이책이 더 오래간다.

하지만 내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 한다.

한 달에 스물댓 권의 책을 꾸준히 구입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

아내가 책 한 권 고르라고 했을 때도 잠시 망설였던 건 ‘굳이 돈 주고 살 필요가 있나?’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학교에서 읽으라고 한 책이 있는데 책값이 얼마 안 되어 배송료가 발생하니까 차라리 한 권 더 얹어서 배송료 안 내고 받자는 것이었다.




무슨 책을 살까 망설였다.

한 번 읽고 끝낼 책은 굳이 사지 않아도 될 테고 그렇다고 무게감이 많은 책을 고르면 배송료를 아낀다는 취지에 벗어난다.

책장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볼만한 책.

그런 책으로는 시집이 제일이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잔잔히 적시는 서정시로.

마음을 정한 순간 퍼뜩 떠오른 시인이 있었다.

브런치 사이트에서 어쩌다가 엮인 젊은 시인이다.

오래전부터 시집 한 번 사야겠다고 마음만 먹었지 실천을 못했다.

모니터에 떠다니는 시어를 읽는 것보다 손에 시집 한 권 들고 밑줄 그어가면서 속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는 게 백 배 천 배 더 낫다.

그래서 시집은 아까워하지 말고 돈 주고 사야 한다.

아내에게 <그대, 꽃처럼 내게 피어났으니>라는 시집을 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꽃이 여기 활짝 피어 있는데 또 무슨 꽃을 찾느냐고 나를 웃겨댔다.

그래, 시인의 노래처럼 아내의 입가엔 꽃이 피려나 보였다.

시를 읊고 싶은 날이 있다.

눈이 글을 따라 달려가는 게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소리를 내면서 읊고 싶은 날이 있다.

때론 천천히 때론 후다닥 빨리 때론 높은 소프라노 톤으로 때론 낮은 베이스 톤으로 읊다 보면 환희에 찬 함성이 되기도 하고 즐거운 노래가 되기도 하고 슬픈 통곡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자락 시를 읊고 나면 가슴에 켜켜이 쌓인 먼지가 씻겨나간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다.

그런 시가 담겨 있는 시집을 손에 들고 다니고 싶은 날이 있다.

통유리창이 커다란 카페에 앉아서 시집 한 권 펼쳐놓고 장닭이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커피 한 모금 마시고 고개 들어 시 한 줄 음미하고 싶은 날이 있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시집인데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갔다.

겨울은 이래서 시집을 들고 다니기 딱 좋은 계절이다.

시집 한 권 챙겼을 뿐인데 집을 나서는 기분이 괜스레 좋아졌다.


시인은 달빛이 부서지는 밤에 그 곁의 별이 되고 싶었나 보다.

별처럼 오래도록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었나 보다.

어두워지는 하늘의 노을을 보면서도 그 사람을 떠올렸나 보다.

한참을 가시지 않으니 여지없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봄비가 내릴 때도 그 사람을 그려본다고 했다.

두 눈을 똑바로 떠서 그리는 것보다 눈을 감았을 때에야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나 보다.

아름답고 애처로운 모습이 봄비를 닮았다고 했다.

옷깃에 빗방울이 스며들 듯이 그 사람에게 스며들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윤슬처럼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둘이 하나이고 싶었나 보다.

그 사람이 존재하기에 시가 태어났고 온통 그 사람으로 시가 도배되다시피 된 것은 온 세상이 그 사람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란다.

그 사람을 만나는 날은 항상 오늘이고 현재이고 영원하다고 노래했다.

이런 시를 어찌 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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