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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23. 2021

손해 보는 게 아니라 선물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그중에 ‘버려둔 불꽃이 집을 태운다’는 단편이 있다.

시골 농부인 이반과 그의 이웃인 가브리엘과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다.

이웃이란 친하게 지내면 사촌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되지만 뭔가 틀어지면 철천지원수가 되는 관계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나 러시아나 아니 전 세계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반의 며느리는 매일 알을 낳는 암탉을 돌보며 계란을 꼬박꼬박 모으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 암탉이 울타리를 넘어 가브리엘의 집에 놀러갔다.

그 사실을 알았지만 다른 일거리가 많아서 암탉을 잡아오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까 암탉 울음소리가 나길래 알을 낳았나보다 했다.

서둘러 알을 챙기려고 가서 보았더니 알이 없었다.

순간 가브리엘의 집에서 낳았구나 생각해서 옆집에 가서 혹시 자기 집 알이 여기에 있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이 싸늘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계란 하나 때문에 양쪽 집안에서 싸움질이 났다.

우리 계란을 가져간 것 아니냐?

누구를 도둑으로 보느냐?

여자들끼리의 언쟁이 남자들에게까지 번지고 집안싸움이 되었다.

급기야는 소송을 벌여 재판까지 치르게 되었다.

나이 많은 이반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이반에게 “불은 번지기 전에 꺼야 해.”라는 선문답과 같은 말을 들려주셨다.

이반은 그 말뜻을 깨닫고 가브리엘과 화해할 마음을 품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가브리엘이 자기 집 헛간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화가 난 이반은 가브리엘을 잡으려고 쫓아가다가 가브리엘이 휘두른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 집도 가브리엘의 집도 불탔고 마을의 절반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제야 이반은 “그때 가브리엘을 쫓지 말고 재빨리 불을 껐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우리 생활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계란 하나가 뭐 대단한 것이라고 그것 때문에 죽네 사네 한다.

사소한 이권이라도 내 것은 절대로 뺏기지 않으려고 하고 남의 것은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 와중에 일의 자초지종을 들어볼 여유는 없다.

우리 집 암탉이 과연 어디에서 알을 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생각에 옆집에 놀러갔으니까 그 집에서 낳았을 것이고 그 집 식구들이 숨긴 거라고만 생각한다.

옆집 사람들도 그렇다.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알이 하나 있으면 자기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인을 찾아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횡재했다며 꿀꺽한다.

의심과 속임수가 서로 맞부딪히면 말싸움이 되고 자존심 싸움이 되고 집안싸움이 된다.

결국 불이 나서 모든 것을 다 태워버려야 끝이 난다.

그러기 전에, 불이 번지기 전에 빨리 꺼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아등바등 긁어모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지금껏 모아놓은 것들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들여다보기가 민망하다.

마치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양동이에 옮겨놓는 것 같다.

두 손 가득 듬뿍 떴지만 양동이에 옮길 때쯤 되면 남은 물이 별로 없다.

거의 다 길바닥에 리고 말았다.

땅에 흘린 물이 아까워서 주워보려고 하지만 담을 수가 없다.

손해 봤다.

살면 살수록 손해 보는 일만 한 것 같다.

그런데 다시 물 흘린 길바닥을 보니 그곳에 풀이 자라고 꽃이 피어 있었다.

그 녀석들은 내가 흘린 물을 먹고 마시면서 자란 것이다.

나는 손해 보았다고 했는데 손해가 아니었다.

흘린 것이 많으면 얻는 것도 많다.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선물 주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세상 모두가 이웃사촌인데 계란 하나 선물한다면 닭 한 마리 얻어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다 그렇게 주고받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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