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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04. 2022

말 한마디가 하늘과 땅만큼 다를 수 있다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의 책들을 좋아한다.

이 분은 주로 17, 8세기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이 있는 교훈을 안겨준다.

조선 선비들을 떠올리면 기와집에 살면서 풍류를 즐기고 먹고 마시는 양반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가난한 백성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았던 양반들을 선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선비’라는 말에는 일평생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고귀한 의미가 들어 있다.

양반이 벼슬살이를 하게 되면 그 관직으로 그 사람을 부르는 게 예의였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벼슬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가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았다면 그 사람도 선비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선비라는 말은 글공부는 꽤 했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유랑생활 비슷하게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갓 쓴 사내를 예의상 부르는 말은 아니다.




17, 8세기의 조선은 굉장히 가난하고 힘이 없는 나라였다.

나라가 힘이 없으니 관직에 올라도 먹고살기가 힘이 들었다.

쉽게 말해서 공무원 월급으로 살아가가 힘든 시대였다.

그렇지만 조선은 유학의 나라였다.

평생 공부하고 공부하는 게 사람의 도리였다.

오죽했으면 죽어서도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는 위패를 썼을까?

평생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선비는 자신이 배워야하는 학생임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배울거리임을 인정하며 살았다.

그 시대의 선비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실생활에 유익하게 사용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가난한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자신도 간당간당 살아가면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정민 교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대쪽 같은 선비들을 찾아서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는 촌철살인과 같은 글귀들을 사자성어 형식으로 압축시켜서 보여주고 있다.

한 편 한 편이 다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교훈들이다.

책의 내용 중에 연암 박지원에 대해서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의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기왕이면 듣는 사람을 배려해서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게 낫다는 교훈이었다.

연암 박지원은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오면서 <열하일기>라는 기행문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다.

<열하일기>는 단순히 여행하면서 기록한 비망록이나 일기 같은 게 아니다.

박지원은 비록 사신으로 가는 길이지만 그 가고 오는 길에 들렀던 마을들의 모습, 산천의 지형, 초목의 특징, 문화와 관습들을 고스란히 기록하였다.

그만큼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남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박지원은 잘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을 ‘귀머거리’라고 부르지 않고 ‘소곤대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장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남의 흠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혀가 굳고 목소리가 막혀서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을 ‘벙어리’라고 하지 않고 ‘남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반상(班常)의 구별이 뚜렷했던 신분제사회였다.

양반이 길을 가면 평민들은 길옆으로 비켜서야만 했다.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는 하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평민들 사이에서도 신분의 높낮이가 있었다.

그런데 선비 박지원은 법, 질서, 문화, 관습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았다.

더 우선되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이다.

막 대해도 되지만 귀하게 대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말 한마디 서비스이지만 말 한마디가 하늘과 땅만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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