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로 그 사람을 나무랐었다.
도대체 현실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는 일을 가지고 마치 진짜 일어날 일처럼 허풍을 친다고 생각했다.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는 것을 볼 수 없듯이 그 사람의 말은 순 거짓말이라며 목에 핏대를 주면서 반대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왜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는다는 말을 갖다 붙이게 되었을까?
호랑이는 육식동물이니까 절대로 풀을 뜯어먹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뒤틀어서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는 소리를 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설마설마하며 찾아보았는데 진짜였다.
호랑이도 풀을 뜯어먹는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한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라 말이 되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EBS 다큐멘터리PD 박수용 씨가 쓴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이란 책이 있다.
그는 1995년부터 1년 중 6개월은 백두산 호랑이의 발자취를 따라다녔고 6개월은 숲속에 잠복하면서 호랑이의 행적을 살폈다.
그 기록을 모아서 2011년에 책을 냈다.
책을 읽다보면 세세한 묘사의 문장력과 끈질긴 탐사의 노력에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느 날 그의 팀이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호랑이의 똥을 발견했다.
굉장한 소득이었다.
호랑이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똥과 오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똥을 조심스럽게 들춰보았는데 세상에나! 풀이 섞여있었다.
호랑이도 풀을 뜯어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구보다도 그 장면을 보는 내가 큰 충격을 받았다.
호랑이에 대한 나의 선입관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공부해야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모르면 배워야 한다.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면 그다음은 어떤 때 먹을까, 왜 먹을까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내 마음대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고 증명 가능해야 한다.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먹을 게 없으니까 풀을 뜯어먹는다는 식으로 둘러대서는 안 된다.
호랑이는 풀로 배를 채우는 존재가 아니다.
곧 죽더라도 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런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는 이유도 그 똥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풀과 함께 뒤엉켜져 있는 사슴의 털들이 보였다.
아!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었는데 뱃속에서 사슴의 털들이 호랑이를 불쾌하게 한 것이다.
호랑이는 사슴을 잡숫기 전에 이빨로 털들을 왕창 뽑아놓기도 했다.
그래도 털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 속 뒤집게 만드는 뱃속의 털들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서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은 것이다.
역시 호랑이는 천재다.
영물인가 보다.
호랑이가 풀을 뜯어먹는 것은 굉장히 영리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안 하기로 했다.
그 말을 갖다 붙이면 그 사람을 굉장히 똑똑한 존재로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만들어낸 우리 조상들의 관찰력에 대단한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호랑이를 만나보기도 힘든데 호랑이가 풀 뜯어먹는 것을 관찰할 정도였다면 우리 조상들의 탐구열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 용기와 끈기와 세심함들이 모여서 오늘날 위대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호랑이처럼 영특하고 강한 민족이다.
그것도 호랑이 중에서도 제일 큰 백두산 호랑이를 닮은 민족이다.
우리나라의 지도가 호랑이를 닮은 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백두산 호랑이보다 더 센 곶감도 있다.
아무도 우리를 건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