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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박은석
Jan 23. 2022
300년이 지나도 기억되는 사람이 되려면...
1983년 국민학교 수학여행 때였을 것이다.
수학여행(修學旅行)은 말 그대로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이다.
학생들이야 집을 떠나 친구들과 밤늦도록 실컷 놀 생각을 했겠지만 선생님들은 현장을 둘러보며 뭐라도 가르치려고 했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들도 있었고 오래된 문화유적지들도 있었고 옛 조상들이 나라를 위해 피땀을 흘린 흔적이 서린 곳들도 있었다.
내 고향 제주도는 그리 넓지 않은 섬이지만 맘먹고 둘러볼 수 있는 곳들은 참 많다.
고려시대 몽골과 기나긴 싸움을 이어갔던 삼별초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 들었다.
얼마나 지독하게 싸웠는지 열 받은 몽골인들이 한라산을 불태워서 그곳에 목장지대를 만든 것이 제주도 조랑말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바다를 통해 숱하게 들락거리는 왜구들을 물리친 외돌개에 서린 전설도 흥미진진했다.
삼일운동의 물결이 전해져 만세운동을 펼친 곳들도 둘러보았다.
그 여러 장소들 중에서 가장 의아했던 곳이 바로 사라봉에 있는 김만덕 기념비 앞이었다.
사라봉은 해안가에 자리 잡은 아담한 봉우리였는데 당시에는 소풍이나 야유회로 최고의 장소였다. 김만덕에 대한 내용을 위인전에서는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제주도에서 자란 우리들은 그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른들의 입에서 가끔씩 '만덕 할망(할머니의 제주 방언)'이라는 말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분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꽤 시간이 흐른 뒤다.
아마 그 수학여행 때도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만덕 할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딴 데 정신이 팔린 나에게 선생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진작 배웠어야 했는데 그때 배우지 못했으니 나중에 시간과 돈을 들여 배워야 했다.
류시화 시인의 책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김만덕은 300년 전 1739년에 양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살에 부모를 여의는 바람에 먹고살기 위해서 기생이 되었다.
몇 년 동안 기생 생활을 하던 그녀는 더 이상 그런 삶을 계속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관청에 간청하고 호소하여 마침내 양민 신분을 되찾았다.
새로운 신분을 얻은 그녀는 장사치들을 위한 주막을 운영하다가 직접 장사판에 뛰어들었다.
제주도의 특산물을 육지로 보내고 육지의 물건을 제주도로 들여오면서 그녀는 거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제주도에 큰 기근이 닥쳤다.
흉년과 태풍으로 사람들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당장 먹을 식량도 부족하였다.
그 상황을 본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곡식을 사들인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당시 전체 제주도민이 열흘 동안 먹을 식량이었다.
자신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하다면서 그랬다고 한다.
김만덕의 이야기는 정조대왕에게까지 전해져서 임금께서 직접 그녀를 궁궐에 초대하여 크게 칭찬해주셨다.
임금께서 너무 고마운 마음에 김만덕의 손을 잡아주셨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그 후로 김만덕은 임금께서 만져주신 손이라며 비단으로 그 손을 칭칭 감고 다녔다고 한다.
소원이 무엇이냐는 임금의 질문에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다고 대답한 김만덕을 위해서 여행단을 꾸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만덕 할망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이 온다.
집안이 망했다고 인생이 망한 것은 아니다.
몸이 팔려갔다고 해서 마음도 팔려가는 것은 아니다.
약하고 신분이 낮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일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
내가 잘된 후에는 반드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꿈은 항상 크게 금강산 여행이다.
그러면 300년이 지나도 기억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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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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