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국가가 세워지고 저물기까지 어느 만큼의 시간이 흐를까?
조선과 고려가 대략 500년이고 신라가 천 년이라고 하니까 우리 생각에 적어도 500년은 나라가 이어진다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의 왕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여 세운 진나라는 고작 15년이었고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15년 정도였다.
을지문덕에게 참패를 당한 수나라도 40년을 넘기지 못했다.
당나라나 송나라는 대략 300년이었고 금나라 원나라는 100년 남짓이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이 그렇게 떠받들었던 명나라도 300년을 넘기지 못했고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청나라도 300년이 안 되었다.
그러고 보면 한반도에 세워진 나라들은 굉장히 장수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겨우 13년이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라고 하더라도 운명이 다하여 소멸하게 되면 그 나라의 보호를 받던 국민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왕건이 세운 고려의 경우 ‘왕(王)’씨 성을 가진 왕족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야 당연하다.
왕건의 부인만 하더라도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면서 그 많던 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김씨나 이씨 혹은 박씨보다도 적다.
국가가 유명을 달리한다는 것은 궁궐 대문에 현판 하나 바꿔 다는 것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피와 눈물이 얼룩지는 일이다.
백성들의 부르짖음, 그 마음의 소원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땀 흘린 만큼 벌어서 먹고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굉장히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일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가 안정되려면 일단은 그 사회를 품고 있는 나라가 안전하고 오래가야 한다.
물론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겠지만 그 문제들을 잘 해결해야 한다.
제국의 흥망성쇠 과정을 보면 위기에 대처하지 못한 나라는 순식간에 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애국가 가사 중에 ‘우리나라 만세(萬歲)’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만년 동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만년을 이어가려면 굉장히 다양한 문제들과 위기상황들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힘과 지혜를 합쳐서 그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만세’를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가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한 것은 1919년의 일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얻은 지 이제 겨우 100년이 지난 것이다.
만년을 이어가는 나라가 되려면 앞으로 9,900년은 더 지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은 파란만장한 시간들이었다.
한 발자국만 헛디뎌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길을 걸어왔다.
가난했고 무지했고 힘이 없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장충체육관을 지어줄 때 한없이 필리핀을 부러워했었다.
머리카락을 잘라서 끼니를 해결하려 했고 피를 뽑아서 밥 한 그릇 사 먹으려고 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힘을 모았고 지혜를 모았다.
가난한 나라였지만 내 나라를 내 손으로 지키려고 애쓰고 노력했다.
나라를 빼앗긴 일은 한 번으로 족했다.
다시는 빼앗길 수 없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지켜왔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았다.
그렇게 지켜낸 나의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만년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먼 후손들이 큰소리로 “만세”를 외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