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곡을 듣기도 하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어릴 때 불렀던 노래여서 그런지 입에 착 달라붙는다.
가곡을 듣거나 부를 때면 고등학생 시절이 많이 떠오른다.
합창반 대원 한답시고 반에서 노래를 좀 불렀었다.
그때가 변성기였는데 목 관리를 잘못해서 나중에는 듣기 싫은 목소리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 집 앞>, <그리움>, <비목>, <보리밭>, <사월의 노래>, <선구자> 등을 부르면 그때의 정취가 살아나고 그때 내가 꿈꾸었던 꿈들이 떠오르곤 한다.
잘 살아보려고 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반듯한 생활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교와 학과를 정할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게 무슨 재민가? 다른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장래희망이란 게 그런 것이었다.
이 사회에 필요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길러야 했다.
사람마다 남들보다 잘하는 일 한두 가지 정도는 있다.
그 사람의 주특기라고 하기도 하고 전공이라고도 한다.
그게 대학에서 자신이 공부한 학과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자신이 따낸 자격증에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나는 대학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했으니까 한국어와 교육 그리고 국문학이 내 전공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는 이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다.
가끔 이 부분에 관련된 일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내가 글쟁이가 된 것도 아니고 중고등학교 선생이 된 것도 아닌데 은근히 내 눈치를 본다.
왠지 나에게 물어보면 정답을 말해줄 것 같은 그런 기분을 갖는 것 같다.
맞춤법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띄어쓰기는 제대로 한 것이냐, 표준말이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받고 있다.
아내는 옆에서 잊을 만하면 나에게 시 한 편 읊어보라고 한다.
하다못해 삼행시라도 지어보라며 내 성미를 슬슬 자극한다.
어찌어찌 맞춰주면 “역시!”하며 추임새까지 친다.
그런데 대학 4년 동안 전공으로 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잊어버린다.
딸아이가 <사씨남정기>를 읽고 있길래 ‘아! 그런 책이 있었지? 그런데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재빨리 검색해보고서야 ‘맞아! 맞아!’ 속으로 외치고 있다.
내가 국문학을 공부한 게 맞는지 의심이 간다.
이게 내 주특기이고 전공이라고 했는데 남들 앞에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때 공부한 게 지금은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맞춤법 개정안이 발표되면 이전의 맞춤법은 틀린 지식이 되고 만다.
띄어쓰기는 이게 분명하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다며 찾아봤는데 벌써 20년 전에 바뀌었다고 한다.
교육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했는데 내 아이들 교육도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점점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어릴 적 꿈꾸었던 게 생각이 난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가곡을 들으면 막연히 ‘그때는 그랬지!’라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실력이 좋아지는 전공이 있다.
그런 주특기가 있다.
그게 뭐냐 하면 남들 앞에 뻔뻔스러워지는 것이다.
잘못해도 잘못하지 않은 척, 틀려도 틀리지 않은 척한다.
내 잘못을 알려주면 오히려 내가 큰소리친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당신 눈이 잘못 본 것 아니냐고 하면서 말이다.
내가 신호등을 무시한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실수였고 신호등 불빛이 빨리 바뀌는 바람에 그런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신호등을 무시하는 것을 보면 그 꽁무니에다 대고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속으로 욕을 한다.
이런 일로 올림픽 대회를 열면 나도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 혼자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건 나의 주특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해야 하면 좋을 일은 잘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타고 난 실력을 발휘한다.
진짜 내 전공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