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그렇다.
일본 사람은 왠지 믿지 못하겠다.
꿍꿍이속이 있어서 겉으로는 웃지만 속에는 다른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20년 전에 일본 사람 한 명과 며칠간 계속 만난 일이 있었다.
당시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 중이었는데 내가 가는 곳마다 그 사람이 보였다.
버스에서도 만나고 식당에서도 만나고 관광지에서도 만났다.
계속 마주치니까 서로 인사나 하자고 했다.
근데 그 사람은 우리말을 못하고 나는 당연히 일본말을 못 했다.
영어로 몇 마디 말을 나눴는데 영어도 서로 약했다.
그런데 자기가 중국어를 조금 한다고 했다.
나도 대학에서 중국어를 조금 배웠기에 그 기억을 살려 중국어로 대화를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만나서 중국어로 이야기를 할 만큼 나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그런데 며칠 동안 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 일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달라졌다.
일본 사람 중에도 친절하고 믿을만하고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그랬다.
그렇다면 나에게 일본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보다 먼저 일본 사람을 만났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나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일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뭔가 안 좋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경험을 가지고 일본 사람들은 이렇다고 나에게 알려주었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 사람은 이럴 거라고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일본 사람 한 명을 만나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동안 굳어졌던 일본 사람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뭐든지 경험해보아야 알 수가 있다.
일본 사람에 대한 편견이 하나 깨어지면서 새로운 생각이 하나 생겨났다.
좋은 현상인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 새로운 생각이 일본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일본 사람은 친절하고 믿을만하고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또 뉴스를 보거나 하면 나의 말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일본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일본 사람은 나빠!”라고 말을 한다.
도대체 일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다.
좋다가도 나쁘고 나쁘다가도 좋은 구석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제품을 대하는 마음도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한다.
일본 제품은 절대 사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카메라는 일본 제품이 제일 낫다고 말을 한다.
일본 소설은 멀찍이 거리 두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가까이 두며 시오노 나나미의 글들은 애써 찾아서 읽어본다.
매사에 이런 이중잣대를 두고 있다.
애초에 좋고 안 좋고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었다.
단지 내 마음에 흡족하게 들면 좋은 것이 되었고 내 마음에 거슬리면 안 좋은 것이 되었다.
이게 나의 기준이다.
어쩌면 나는 모든 것을 내 마음에 맞추고 있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인 셈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날카로운 칼날과 같아서 이렇게 사용하면 이롭고 저렇게 사용하면 해롭다.
칼은 감정이 없다.
칼이 좋고 나쁜 게 아니라 칼을 사용하는 내가 좋게 사용하기도 하고 나쁘게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쓰기 나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좋고 나쁘고가 결정된다.
내가 그 사람의 좋은 면을 보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나쁜 면을 보면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좋고 나쁘고의 문을 여는 열쇠는 나에게 있다.
나의 눈과 나의 귀와 나의 마음이 바로 그 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