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한창 좋아할 때였다.
100원짜리 동전 넣으면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데 점심값 못지않은 금액을 주면서 비싼 커피를 마실 필요가 있냐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라고 말을 해 주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은 나만의 휴식시간이기도 하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 수양의 시간이기도 했다.
남들은 무슨 레슨을 받는다면서 한 달에 몇십만 원의 수강료를 내는데 하루 몇천 원으로 나 자신을 가꾸어갈 수 있다면 이게 오히려 이득이라고 했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저녁마다 술 한잔 걸치는 사람들보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사람이 낫지 않냐고도 했다.
당시의 나는 커피 한 잔이라는 경제적이고 효율 좋은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곁에 있던 사람들의 관점에 따르면 나의 방식이 괜한 낭비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끔은 밤늦은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화를 보든가 손흥민 축구 경기를 본다.
끝나면 새벽 시간이다.
잠시 눈 붙이고 일어나면 몸이 뻐적지근할 것이다.
컨디션이 무너진 상태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래도 그 시간이 좋다.
식구들 모두 잠든 시간에 나 홀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멍때리고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모처럼 손흥민이 골을 넣기라도 하면 역시 축구 경기 보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물론 잠을 충분히 많이 자는 게 건강에 좋다는 말을 나도 안다.
하지만 사람이 잠자는 것만으로 살 수는 없다.
때로는 잠을 적게 자서 몸이 무겁더라도 마음만큼은 홀가분해지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해코지하거나 사고를 치자는 것이 아니다.
매일 그렇게 살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가끔, 아주 가끔 나를 구속하는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매뉴얼을 만들고 그 매뉴얼대로 실천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던 일들이 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지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글을 적어놓게 했다.
나는 내 삶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뭔가 똑부러진 결과물을 얻으려고 했다.
나중에 시간이 없었다느니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했다.
류시화 시인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 노래했듯이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라는 말만 하려고 했다.
그다음 구절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노래이길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란 말 같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많은 길을 부지런히 달려왔다.
세워놓은 매뉴얼에 충실하게 잘 살아왔다.
이제는 매뉴얼대로 계속 살아가기가 싫다.
이만큼 했으면 되지 않았나 싶다.
매뉴얼은 좀 더 빨리, 좀 더 정확하게, 좀 더 경제적으로 일을 하기 위한 지침이다.
새로 닦은 신작로를 따라서 전속력으로 달려가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옛길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누가 아나? 신작로를 한창 달리다가 길이 무너진 곳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진작에 옛길로 접어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매뉴얼이라고 해서 완벽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매뉴얼을 수정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지난 시간들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열심히 뛰어다닌 시간들이다.
지금은 그 매뉴얼을 수정하고 새롭게 뜯어고치고 있다.
정해진 것은 없다.
자유롭다.
그 자유 속에서 하나씩 틀을 맞춰갈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새로운 매뉴얼에 맞춰 힘차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