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고래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칭찬받기를 좋아한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칭찬을 들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제아무리 무서운 호랑이나 사자도 자기를 칭찬하는 사육사에게는 꼬리를 내린다. 일본의 의료인인 에모토 마사루는 심지어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에게도 좋은 말을 해주면 물 입자의 모양이 아름답게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보면 고맙다느니 예쁘다느니 하는 좋은 말을 들으면 물도 그 말에 걸맞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예외일 수는 없다.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나는 그 질문에 “사람은 칭찬을 먹으면서 삽니다.”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사실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칭찬받고 싶어서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칭찬받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갓난쟁이 아기일지라도 자기를 칭찬하는 말을 구분한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아기가 왜 나에게는 웃지 않는지 궁금해할 필요 없다. 왜 자기를 보면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예쁘다고 예쁘다고 칭찬해주면 된다. 한 번만 하지 말고 여러 번 해 주어야 한다. 한 번은 누구나 예의상 그렇게 말한다. 아기도 그걸 알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나에게 예쁘다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일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떠 보려고 일부러 울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대번에 티가 난다. 아기를 진심으로 예뻐하지 않는 사람은 그때 고개를 돌리고 관심을 끈다. 그러나 아기를 정말 예뻐하는 사람은 아기가 울거나 말거나 계속 예쁘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면 아기도 그 사람을 보면서 방긋 웃는다.
우리나라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서양 사람들의 눈에 비친 조선 사람들의 얼굴은 왠지 어두워보였다. 기록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는 밝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무엇에 눌렸는지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나는 그 이유를 칭찬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 조상들은 칭찬에 인색했던 면이 있다. 그런데 요즘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다. 칭찬을 많이 받아서 그럴 것이다. 나도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어 안달을 하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속은 그렇다. 누가 칭찬해주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가슴이 환해진다. 뭐 칭찬받을 일 없을까 속으로 생각을 해본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데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칭찬받을만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 책읽기일 것이다. 2009년부터 시작한 1년 200권 독서운동인데 올해가 가장 수확이 큰 해로 기억될 것 같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뉴턴은 고향집에 돌아가서 쉬기도 하고 생각도 하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보카치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친구들과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데카메론>이라는 소설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코로나 상황에서 뭘 할까 생각해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껏 해 오던 책읽기에나 조금 더 신경을 쓰자고 했다. 1년 200권이 목표였는데 일찌감치 목표량을 달성했다. 내친김에 300권에 도전해보려고 했다.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속도가 붙어서 그런지 대망의 300권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읽은 책의 목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잘했다. 박은석. 축하한다!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칭찬한다. 책과 연애하듯이 한 해를 지냈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해준 식구들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