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글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버나드 쇼가 우물쭈물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인간과 초인>이나 <피그말리온> 같은 작품을 읽어보면 머리가 둔한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그를 따라갈 수가 없다.
솔직히 그의 책을 한 번 읽고서는 무슨 내용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도 “나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나의 전 작품을 10년 동안 적어도 2번 이상은 읽어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정말 한평생을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버나드 쇼 같은 사람도 지내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가 보다.
하물며 내가 지난 시간에 대해 후회가 많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어떤 게 가장 후회스럽냐면 20~30대 때 너무 마음이 높았었다는 것이다.
그때 조금이라도 겸손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마치 내가 굉장히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세상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방자하게 지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니까 깊이 있는 공부도 하지 않았다.
누가 좋은 책이라고 권해주면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책 몇 권 읽었다고 마치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은 것처럼 우쭐댔다.
글도 좀 쓴다고 젠체했다.
몇 줄 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렇게 보내버린 내 젊음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다.
그때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고 조금이라도 더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쉽게 시간을 흘려보내버렸다.
14년 전 나에게 위기의식이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14년 전에 나는 어휘력을 차츰차츰 잃어가고 있었다.
해외에서 살아가느라 그 나라 말을 배워가고 있었는데 그와 반비례해서 우리말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설명하려는데 갑자기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국어사전에 실린 어휘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막상 내가 알고 있는 어휘는 얼마 안 되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명색이 한국어교육을 전공했는데 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단어와 표현력을 익히고 싶었다.
더욱 다양한 상황과 역사를 알고 싶었다.
30대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에야 비로소 공부를 제대로 해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늦었다.
늦은 만큼 절박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꺼내든 방법이 바로 1년 200권 책 읽기 운동이다.
20대와 30대의 근 20년을 게을리 보냈는데 그 시간들을 만회하고 싶었다.
내 의지가 약해질까 봐 여기저기 소문도 냈다.
그렇게 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다.
버나드 쇼가 말한 것처럼 10년 동안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아마도 버나드 쇼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을 것이다.
나도 책 읽기 운동을 10년 넘게 꾸준히 하다 보니까 책 읽기가 나의 습관이 되고 삶이 되었다.
중간에 몇 년 동안은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책 읽기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이제는 하루라도 책장을 넘기지 않으면 그게 도리어 어색할 것 같다.
왜 그렇게 책을 읽느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게 된 정수칠이라는 제자에게 다산 정약용이 써준 글이 있다.
“공부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일세.
공부는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무이한 것이네.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수 없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공부라네.” 왜 그렇게 책을 읽느냐고요?
책 읽는 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랍니다.
++다산 정약용이 제자 정수칠에게 쓴 글의 내용은 정민 교수의 <다산의 제자 교육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