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본 것 없다 항상 본전이다

by 박은석

해외에서 살다 보면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 중에 크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창 무엇인가 해 보려던 때라서 뭔가 한 건 크게 물었다고 생각되면 거기에 투자를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다.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본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꼬여만 간다.

그제서야 먼저 이주한 분들을 찾아가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먼저 온 사람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났고 되돌리기에는 복잡한 상황으로 치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하소연을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다.

우리 식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되고 거기 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수업료는 그 당시에는 괜한 지출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 값어치를 한다.

강의 시간 내내 졸고 앉아 있다고 해도 수업료의 값어치는 한다.

졸면서도 얻는 게 있다.

공부를 못해도 선생님을 만나고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것은 비싼 수업료를 냈기 때문이다.

손해 안 보려고 움켜잡았다고 해서 손해 안 보는 게 아니다.

돈이란 것은 가만히 가지고 있으면 그 값어치가 떨어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내 어릴 적 삼양라면은 고작 100원이었다.

그때 돈 100은 돼지 저금통에 넣은 후 지금 꺼내서 라면을 사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어라?

돈은 그대로인데 라면값은 열다섯 배는 더 뛰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손해 안 보려고 움켜쥐었다면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손해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때 라면을 엄청 사두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돈 대신 라면을 가지고 있는 게 낫다는 모험을 거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때 이익을 보든 손해를 보든 그 모든 과정을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낫겠다.

실험실에서 연구할 때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고 연구 결과가 실패할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공부하는 시간인데 말이다.

우리의 삶도 끝없는 공부, 평생 이어지는 공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 조상들이 유학을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죽어서 땅에 묻힐 때 여기 학생이 누워 있다며 '학생부군신위'라고 썼다.

우리는 평생 인생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러니까 꾸준히 수업료를 내야 한다.

수업료 내는 것을 아까워하면 배울 것도 그만큼 줄어든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공짜밖에 없다.

값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싼 것은 싼값을 지불하고 비싼 것은 비싼값을 지불해야 한다.

지불했으면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나의 이런 마음을 미리 알아차렸는지 시인 롱펠로우는 <잃은 것과 얻은 것>이란 시에서 노래했다.


“내 이제껏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잡은 것,

저울질해 보니 자랑할 게 없네.

나는 알고 있네.

긴긴 세월 헛되이 보내고

좋은 의도는 화살처럼

과녁에 못 닿거나 빗나가 버린 걸.

그러나 누가 감히 이런 식으로 손익을 헤아릴까?

패배는 승리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네.

썰물이 나가면 분명 밀물이 오듯이.”


한 해를 마무리짓는 시간이 되면 보람 있었다는 말보다 아쉬웠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

잃은 게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

얻은 게 많았으면 잃은 것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은 돈이든 시간이든 건강이든 인간관계든 정해진 한도가 있다.

천칭 저울의 양쪽 쟁반처럼 이쪽이 내려가면 저쪽이 올라가고 저쪽이 내려가면 이쪽이 올라간다.

이래저래 손해본 것 없다.

항상 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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