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소설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부록에 나와 있는 작가 연보를 살펴본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짧은 지면에 작가의 일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짤막하게 적어놓는데 그 작가를 이해하기에 좋은 자료가 된다.
문학작품은 작가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인생을 살펴보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런데 위대한 작가들의 연보를 보면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사랑에 굶주린 청소년기를 지내기도 하고, 건강이 약해서 늘 질병에 시달린 경우도 있다.
명성을 얻기까지 긴 시간 동안 무명작가 신세를 거치기도 했고,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글쓰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던 경우도 있다.
배우자 때문에 심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던 작가들도 있고 사랑하는 자식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작가들도 있다.
작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 어느 곳에 숨겨놓는 버릇이 있다.
<아테네학당>을 그린 라파엘로는 오른쪽 아래 모퉁이에 자신의 얼굴을 살짝 그려놓았다.
성 시스티나 성당 천정에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 때 살가죽이 벗겨지는 심판을 받을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며 대담하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소설가들도 작품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심어놓는다.
주인공이 아픈 것은 실은 작가가 겪었던 아픔이다.
등장인물 중에 실연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작가가 겪었던 실연의 아픔을 느낄 수가 있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가지고 글을 쓴다고 했는데 비단 헤밍웨이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글을 쓴다.
그래서 글 좀 쓰겠다고 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고상한 취미를 가져보는 것도 좋고 막노동도 해보면 좋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사실 고생을 사서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무엇엔가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을 좋아하거나 대가를 지불하기가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돈을 내서 봉사활동을 가는 경우도 엄밀히 따져보면 손해를 보면서 가는 것이 아니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보람을 얻고 삶의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지불한 대가보다 얻는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면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다.
얻지 못하면 돈을 날린 것이고 손해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눈에 보이는 것을 얻어야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후한 값어치를 할 때도 많다.
어쩌면 아주 중요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기쁨, 평화, 우정, 사랑, 자존감, 행복 등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경험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쓸데없는 경험이란 없다.
언젠가 다 쓸모가 있다.
많은 눈물을 흘려봐야 웃음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배고픈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병치레를 많이 한 사람은 일상의 삶이 귀하다고 말한다.
사랑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사랑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그런 경험들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런 말들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저렇게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사느냐며 푸념을 늘어놓기나 한다.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에 처해지든 다 소중한 경험이다.
그 경험들은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재료가 된다.
하지만 그 경험들을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괜한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내게 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