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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남자는 말야
내가 몇 개 국어를 하는지 꼽아봤다
by
박은석
Jan 12. 2022
내가 나온 학교가 한국외국어대학교인데 이 학교 학생들은 신입생 시절에 자기가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는지 손으로 꼽아보는 버릇이 있다.
사발에다 막걸리를 부어서 원샷으로 마셔야 통과가 된다고 하는 학교도 있는데 외대생들의 통과의례는 외국어이다.
누가 시켜서 그럴 때도 있고 자기 혼자 심심풀이로 자기가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들을 중얼거려 본다.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면 다양한 학과의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기 때문에 각 나라의 인사말을 물어볼 기회가 많다.
불어나 독일어는 이미 몇 마디 알고 있으니까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런데 베트남어 ‘씬 짜오’나 태국어 ‘싸왓티 카, 싸왓티 크랍’ 같은 말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태국어 인사말은 남자에게 할 때와 여자에게 할 때가 다르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게 인사말 하나 배웠을 뿐인데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늘었다.
고작해야 인사말 아니냐고 하는데 고작이 고작이 아니다.
말이라는 게 하나를 알면 금방 둘, 셋을 알게 된다.
첫 하나의 단어가 어려운 것이다.
갓난아기가 말을 배울 때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아이는 입술을 붙였다가 뗄 때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어떨 때는 “음~마”로 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으~빠”로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옆에서 아기 부모들은 우리 아기가 “엄마”라고 했다고 “아빠”라고 했다고 좋아 죽는다.
그러면서 아기에게 더 자세히 “엄마”, “아빠” 발음을 들려준다.
그렇게 해서 아기가 엄마라는 단어 하나, 아빠라는 단어 하나를 터득한다.
그 순간 아기는 한국어를 구사하게 된 것이다.
고작 한국어 두 단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다음 한 단어만 익히면 아이의 언어 실력은 수직 상승한다.
아기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배우는 말은 ‘뭐야?’일 것이다.
“이게 뭐야?”
‘뭐야?’라는 말을 익힌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
엄마 아빠에게만 물어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뭐야?”를 묻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고양이든 강아지든 눈에 보이는 존재가 있으면 아기는 일단 ‘뭐야?’부터 묻는다.
아기가 “뭐야?”라고 물었으니까 들은 사람은 뭐라고 대답하고 그 대답을 들으면서 아기는 또 새로운 언어들을 습득한다.
물론 고양이 같은 동물은 아기가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고 “야옹”하고 지나가버린다.
그러면 순진한 이 아기는 그다음부터는 고양이에게 ‘야옹이’라고 부른다.
자기가 “뭐야?”하고 물었는데 고양이가 “야옹”했으니까 아기가 생각하기에는 그놈은 야옹이인 셈이다.
마치 호주에 정착한 영국인들이 두 발 들고 뛰는 동물을 보고 원주민들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을 때 원주민들은 자기들 말로 “캥거루(나도 몰라)”라고 했는데 그 동물이 캥거루가 돼버린 것과 같은 꼴이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데 언어도 그렇다.
단어 하나를 아는 게 그 언어를 아는 것이다.
고작 인사말 몇 마디라고 하지 말자.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얼마나 많이 알겠는가?
중국 사람은 평생을 공부해도 중국어를 모른다고 한다.
한국 사람도 평생 공부해도 한국어를 다는 모른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하물며 외국어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과 나처럼 더듬더듬하는 사람의 차이란 것도 오십 보 백 보이다.
나만 말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그 유창하게 잘한다는 사람도 말이 막힐 때가 있다.
세상의 이치란 게 그런 것 같다.
전부를 다 가져야 다 갖는 게 아니다.
조금만 가져도 다 가진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손을 꼽아보니 나는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마인어, 태국어, 베트남어, 히브리어, 엄청나게 많은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나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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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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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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