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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18. 2022

객관적인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자


얼마 전 후배 한 명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남들이 겪고 있는 인생의 아픔들을 언젠가는 자신도 겪게 되리라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기도 몸이 아플 수 있고 심한 질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왜 갑자기 우울한 이야기를 하냐고 했더니 주변에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분들도 보이고 또 장례식에도 다녀오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생로병사가 남의 일 같지가 않고 불현듯 자기 앞에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때가 있었다.

그때가 언제였냐면 아버지께서 떠나셨을 때다.

아버지가 떠났다면 나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스물두 살 때였는데 어쩌면 좀 빨랐다고 할 수도 있고 적당한 나이였다고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들보다는 늦게 찾아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힘이 세고 늘 건강하다고 자부하셨던 아버지께서 쉰세 살이 되자마자 하늘나라로 가셨다.

큰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랬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연약한 사람이란 대상을 생각할 때면 항상 나 자신은 빼서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약해도 나는 강하고 사람들은 병이 들어도 나는 건강하고 사람들은 늙어도 나는 늙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아니, 세월이 흘러 늙기는 하겠지만 나이가 들더라도 남들과는 다르게 나이 들 줄 알았다.

머리는 백발이 되더라도 기력이 왕성하여 걷기도 잘하고 뜀박질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마치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일을 척척 해내고 불가능이 없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나도 남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남들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을 때는 나에게 일어나는 인생의 생로병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잘 관리하면 영원무궁토록 좋아지고 발전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관리를 하더라도 여기서 하나 망가지고 저기서 또 하나가 망가졌다.

완벽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구멍 하나가 터진다.

그러면 완벽했다고 여겼던 작품이 순식간에 망가지고 만다.

그것을 쳐다보는 나의 자존심도 영락없이 무너진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상황을 좀 다르게 보는 시도들을 했다.

나 중심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남들이라면 어떻게 볼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상황이나 사건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내 속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상황의 변화에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자연스러운 일들로 받아들여졌다.




전에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일들이 어떤 순서가 정해져 있어서 나에게 안 좋은 일이 발생했을 때 ‘이제 내가 이 단계에까지 도달했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실 때 양동이 두 개를 주셨는데 그 하나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득 담겼고 다른 하나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매일 양동이에서 한 가지의 일을 꺼내서 써야 하고 두 개의 양동이에 담겨진 일들을 다 써야만 천국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양동이에서 좋은 일을 꺼내는 날에는 좋은 일이 일어나니까 좋고 양동이에서 안 좋은 일을 꺼내는 날에는 천국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 앞당겨지니까 좋다.

그러니까 모두가 좋은 날이다.

나는 그렇게 객관적으로 내 인생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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