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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31. 2022

좋은 가르침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기독교인이 되었다.

나의 의사 결정과는 상관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세상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세상은 교회 안의 영역과 교회 밖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교회 안은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고 교회 밖은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나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끔 가르쳐준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번역소설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다.

학교 다닐 때는 시험에 나올까 봐서 달달 외웠다.

그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나는 책을 좋아했던 아버지 덕택에 그 책을 어렸을 때 이미 훑어보았다.

우리말로 제대로 표현한다면 ‘하늘 가는 힘겨운 길’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책에서도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려면 반드시 교회 안에 있어야 했다.




나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훈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비슷한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에서 베껴서 이야기하는 짝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최고의 가르침은 바로 성경에 있다고 믿었다.

인도의 위대한 영웅(마하트마) 간디도 자신은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예수가 전한 산상수훈은 좋아한다며 자주 읽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는 기독교가 가르침을 전하는 데 있어서 판정승을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독교가 우월하다는 생각들은 나에게 서양의 문화들은 좋고 발전된 것인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문화들은 안 좋고 낙후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학교에서도 세계사 시간에 서양의 역사는 장황하게 나열했는데 동양의 역사는 고작 중국 역사를 조금 건드릴뿐이었다.




왜 우리는 우리의 것들을 하찮게 여겼는지 모르겠다.

아마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힘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인생 가르침들은 동양의 공자, 노자, 석가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황과 이이가 그 사상들을 정리하여 잘 가르쳤다.

심지어 예수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산상수훈>의 내용들도 우리에게 비슷한 가르침으로 전해져오고 있었다.

성경에서 황금률이라고 하는 말씀이 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이다.

그런데 예수보다 500년 전에 살았던 공자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논어> 안연(顏淵) 편에서 중궁(仲弓)이 인(仁)에 대해서 공자에게 물었을 때 공자가 한 말이 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남에게 하게 하지 말라.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며 ‘황금률’이라고 별명을 붙였는데 공자는 이미 500년 전에 그 내용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가 공자의 가르침을 베낀 것인가? 그건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다.

그런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가르침은 세계 어디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가르쳐진다.

부모님께 정성껏 효도를 하라는 말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라는 말씀,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씀은 세상 어디에나 비슷하다.

좋은 가르침은 옛날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오늘날에는 쓸모없다고 하지 않는다.

종교의 굴레를 씌워서 이것은 여기서만 알려주는 참된 가르침이고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에서나 통용된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그게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증거이다.

좋은 가르침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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