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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05. 2022

잘 죽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렸을 때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큰 공포로 다가왔다.

그때만 해도 집 앞의 큰길로 꽃상여가 지나가곤 했다.

상여꾼의 노랫소리도 딸랑거리는 종소리도 만장을 세워 들고 “아이고 아이고” 흐느끼는 소리들도 모두 다 무서웠다.

그 모습을 안 보려고 집에 들어가서 꼭꼭 숨어 있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하는 생각을 했다.

‘교회에서 배운 대로 천국에 가는 것일까? 만약 천국에 못 가면 지옥에 간다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지?’ 

그런 생각의 끝에는 늘 공포감이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가끔씩 당신이 죽으면 이 집안을 어떻게 하느냐며 야단을 치곤 하셨다.

야단을 치시더라도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참 야속했다.

아마 아버지에게는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이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무 살 때 친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때 처음 운구를 했었다.

여섯 명이 세 명씩 좌우로 나뉘어 운구를 했는데 산을 올라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줄은 몰랐다.

스물두 살 때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때만 해도 장례식은 반드시 집에서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면서 집에까지 모시고 갈 수 있게 조치를 취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무슨 주사를 한 대 놔주고 앰뷸런스로 모셨다.

급하게 따라오신 목사님께서 안방에 누워계신 아버지에게 편안히 가시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눈을 감겨주셨다.

아버지의 친구께서 소주를 가지고 오셔서 직접 염을 해주셨다.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평상시 아버지의 야단치시던 소리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떠나셨으니까 이제 집안은 어떻게 되지?’ 그저 막연하기만 했는데 6남매가 힘을 모아 어찌어찌 지금껏 견뎌오고 있다.




이렇게 몇 번의 죽음을 경험하고서도 나에게 죽음은 아직 멀리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는 한 명씩 계속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잘 알았던 사람도 있고 한 번 인사만 나눈 사람도 있고 연로하신 분도 계셨고 나와 동갑내기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은 결혼을 하고 나서이다.

마냥 좋기만 했을 신혼생활이었었는데 불현듯 ‘내가 죽으면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이 내 마음에 쳐들어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려면 내가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또 내가 너무 오래 살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나니까 그것도 썩 좋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알콩달콩 사랑을 하며 살다가도 언젠가 때가 되면 서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맞이할 죽음이라면 죽을 때 잘 죽어야 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잘 죽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오랫동안 연구하기도 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음을 헛되이 맞이해서는 안 된다.

죽음을 앞두고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사했더니 사람들의 마지막 말들은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럴 것 같다.

나도 떠나갈 때 반드시 이 말들을 남겨야겠다.

이 세 단어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잘 산 사람이고 잘 죽는 사람일 것이다.

‘고마워’라는 말은 당신 덕택에 내가 살아왔다는 겸손한 말이다.

‘미안해’라는 말은 내가 당신에게 많이 부족했다는 사과의 말이다.

‘사랑해’라는 말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며 당신의 모든 것을 덮어준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잘 죽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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