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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1. 2022

‘책의 여행’이 나에게 도착했다


나에게는 방랑끼가 조금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까마득한데 20년 전 신혼 때 아내와 함께 이집트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해외여행의 빗장이 풀린 게 1992년이었으니까 당시만 해도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론리 플래닛 한 권, 여행사에서 비행기 티켓 끊을 때 얻은 책 한 권, 인터넷 카페에서 얻은 정보 조금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다면 전혀 겁이 없을 것 같은데 그때는 잔뜩 긴장을 하면서 여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의 방랑끼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틈만 나면 시내로 나가서 현지인들에게 말장난도 치고, 매일 저녁마다 숙소를 구하느라 호텔에서 흥정도 하고 계획에도 없었던 여행지를 발견하면 덜컥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긴장감이 넘치는 즐거운 여행을 했다.




첫 아이가 태어나 열 달이 되었을 때는 그 아기를 품에 안고 홍콩으로 전지훈련을 갔었다.

2개월 후에 더운 나라로 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운 지방의 분위기를 미리 맛보자고 하면서 떠난 여행이었다.

유모차에 아기 포대기에 이유식 조리를 위한 전기 불판과 냄비까지 준비해서 떠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피곤하면 집에서 푹 쉰다고 하는데 나는 집에서 푹 쉬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피곤하면 어딘가로 나가야 한다.

내가 사는 분당 지역은 탄천이라는 시냇물이 흐른다.

이 물길을 따라서 우리 집 앞에서부터 무작정 걸어가면 5시간이면 잠실 선착장에 도착한다.

산길로는 우리 집 근처에 불곡산 입구가 있는데 거기서부터 걸어서 7시간이면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至和門)에 도착한다.

내 방랑끼가 나를 그렇게 걸어보게 하였다.




내 딸과 아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을 곳을 싸돌아다녔는지 잘 모른다.

그저 아빠가 데려갔으니까 또 새로운 곳에 왔구나 생각하는 것 같다.

딸아이가 역사 공부를 할 때 중요한 지명이 나오면 나는 거기에 우리가 갔었다고 얘기해준다.

딸아이는 눈이 휘둥그레 해질 뿐이다.

기와지붕이 있는 곳은 다 거기가 거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동해바다, 서해바다, 남해바다, 갈대밭, 억새밭,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내 고향 제주도까지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내가 이렇게 틈만 나면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다.

돌아다녀 보면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바람 쐬고 맛난 것 먹는 것 외에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척이나 많다.

나의 책 읽기 운동에 영향을 준 일본 작가 나카타니 아키히로는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에서 20대 때는 가능한 한 많은 나라에서 똥을 눠보라고 했다.

많이 여행을 해 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어디 나다니기가 쉽지 않다.

사람을 많이 대해야 하는 나로서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설날과 추석에도 가족 모임을 자제하고 있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인지 누군가 아주 멋진 여행 계획을 추진하였다.

몸 대신 마음으로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세상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여행과 독서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안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책의 여행’이다.

말로만 들었던 책의 여행이 나에게까지 왔다.

저자에게서 출발한 책은 지난주에는 경기 북부 의정부 쪽에 있었는데 오늘은 경기 남부 분당에 있는 나에게로 왔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또 어디로 갈 것이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꺼낸 작가님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은 이 책을 잘 읽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이 책을 여행시켜준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이번 책의 여행은 조이홍 작가님을 출발하여 Lisa 작가님을 거쳐 저에게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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