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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2. 2022

미신은 이제 집어치우자


우리는 굉장히 과학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굉장히 신화적인 세상을 살고 있다.

인간의 과학기술은 내 발 앞에 놓인 돌멩이가 몇 억 년 전에 만들어졌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달나라에 달토끼가 없는 것도 밝혀냈고 머지않아 화성에 집을 짓겠다고 한다.

키보드 몇 번 두드리면 어지간한 지식과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두뇌를 최고로 활용한다는 바둑에서조차 이미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두뇌를 압도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는 영험한 장소라며 정성껏 제사를 드렸던 곳들이 이제는 멋진 관광지가 되어 있다.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도 과학적으로 해석해내었고 이상한 광경이 연출되는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다.

분명 우리는 과학 만능의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과학적인 생각을 하며 살기보다 미신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갈 때가 더 많다.




내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밤에 휘파람 불지 말라고 하셨다.

밤에는 손발톱 깎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청소를 하고 나면 빗자루를 세워놓지 말라고 하셨다.

방에 들어갈 때는 문지방을 밟지 말라고 하셨다.

이런 것들을 어기면...

귀신이 온다고 하셨다.

그때도 그 말씀을 들으며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어머니는 독실하게 기독교 신앙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귀신을 이야기하는 게 솔직히 우스웠다.

그래도 그 말을 들을 때 진짜 귀신이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휘파람을 제대로 불지 못한다.

나를 위한 변명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대명천지에 여전히 미신(迷信)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미신은 신(神)이 아니라 미혹받는 믿음이란 뜻이다.

잘못된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하지도 않은데 그냥 믿어버리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나도 그렇게 살았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면 손을 뒤틀어서 깍지 끼고 그 손을 팡 안쪽으로 한 번 접은 후에 깍지 낀 손가락 틈바구니를 보면서 다음에는 가위바위보 중에서 무엇을 낼까 생각했다.

깍지 낀 손가락 틈바구니로 보이는 빛의 모양을 따라 가위바위보를 하면 이긴다고 믿었다.

하이고! 그게 뭐가 다르다고 그렇게 믿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굉장한 의식처럼 경건하게 치렀다.

결과는 내가 이길 때도 있었고 질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믿음이 아니라 미신이었다.

두 갈래 길 앞에서 어느 길로 갈까 정할 때도 그냥 정하지 않았다.

왼쪽 손바닥에 침을 퉤 뱉고서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모아서 왼손바닥 위의 침을 때렸다.

그리고 침이 많이 튀는 방향을 택했다.

그게 좋은 길이라고 믿었다.

많이 해봐서 아는데 그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다.

미신이다.

우리는 그런 미신을 믿으며 살아왔다.




오 헨리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잎새>에서는 폐렴으로 죽어가는 한 여자아이가 창문 밖에 보이는 담쟁이 이파리 하나를 자기 자신의 생명이라고 믿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저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으면 자신도 살아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잎사귀가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떨어질 것이라 믿는다.

철없는 생각이지만 우리가 그 여자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은 밝혀 주어야 한다.

담쟁이 이파리와 너의 생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이다.

담쟁이 이파리가 떨어져도 너는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손바닥에 침을 튀기지 않고 맘에 드는 길을 택하면 된다고 말이다.

손 점을 보지 않아도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미신일랑 이제 집어치우자.

그 길이 안 좋은 길이면 어떡하냐고?

그땐 그 길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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