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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6. 2022

아직도 10승지와 우복동을 찾고 있나요?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많이 퍼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토는 유린되었고 가뭄과 흉년으로 나라 살림은 거덜이 났다.

그런데도 양반들은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양의 높은 양반에서부터 고을의 사또에 이르기까지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온갖 학정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유랑민이 되기도 했고 산속에 들어가 산적이 되기도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목숨이었다.

그러니 허구한 날 하늘을 올려다보며 좀 더 나은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에 빠지곤 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정감록(鄭鑑錄)>이라는 책이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이 책은 조선이 건국 후 몇 백 년이 지나면 망하고 또 다른 나라가 세워질 것이며 그 사이에 여러 번의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간에 널리 퍼진 일종의 예언서이다.




예언이란 것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대체로 사람들은 예언에 대해서 굉장히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하기는 앞날을 이야기해준다고 하니까 귀가 솔깃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오늘날로 치면 정감록은 그야말로 베스트셀러였다.

그런데 예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현실 세상이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머지않아 망할 세상인데 여기서 애써 노력하며 살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어지겠고 전쟁과 기근이 이어질 텐데 하늘 아래 안전한 곳은 어디 없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정감록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전혀 피해를 보지 않는 땅을 소개해주었다.

이곳에서는 굶주리지도 않고 재앙을 당하지도 않으며 전염병으로부터도 안전하여 자손만대로 잘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10승지(勝地)라는 곳이다.




10승지로 거론된 땅은

①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의 금계마을

②경상북도 봉화시 춘양

③충청남도 보은 속리산

④전라북도 남원 운봉

⑤경상북도 예천 금당실

⑥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마곡

⑦강원도 영월 정동쪽 상류

⑧전라북도 무주군 무풍

⑨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⑩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이다.


하나같이 당시로서는 산속 깊은 곳이었다.

실제로 10승지를 찾아 떠났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탐관오리의 수탈이 심할수록, 전쟁이나 가뭄이 심할수록 가산을 처분하고 가족들을 이끌고 10승지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때는 경상북도 상주와 충청남도 보은 사이에 외적이 침입하지 못하는 우복동(牛腹洞)이라는 마을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실제로는 딱히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 상상 속의 마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 떠났다.

그곳은 그들의 유토피아였다.




이런 세태를 보면서 다산 선생은 제자들에게 따끔하게 한 말씀하셨다.

“우복동 같은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설령 그런 곳이 있어서 정말로 배고프지 않고 자식 많이 낳아 살 수 있다고 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후손들을 노루나 토끼로 만드는 일일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고작 배부른 짐승의 삶에 만족하고 말 것인가?

공부 외에 딴생각을 품지 말아라!” 200년 전 다산 선생은 그렇게 제자들을 야단치셨다.

그 말을 듣고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시대를 잘 못 태어났다고, 집안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나를 밀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별의별 핑계를 대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10승지를 찾고 싶었고 우복동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10승지보다, 우복동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더 좋은 곳이다.

딴생각 품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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