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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9. 2022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게 다행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

기왕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면 ‘아아루’라는 지상낙원에서 살기를 원했다.

‘아아루’는 갈대밭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나일강 유역처럼 무척 풍요로운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려면 죽은 후에 지하세계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야 했다.

그 시험은 죽음과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가 있는 재판정에서 치러졌다.

먼저는 42명의 배심원 앞에서 살아생전에 자신이 반듯하게 살았음을 고백해야 한다.

“저는 신성모독을 하지 않았으며 거짓말한 적이 없고

게으르지 않았으며 저울을 속인 적이 없고

도둑질한 적이 없으며 사람을 죽인 적도 없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42가지 항목에 대해서 깨끗했음을 고백한 후에 진실과 정의의 깃털과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질한다.

깃털보다 심장이 무거우면 그는 악어의 먹이가 되고 심장의 무게가 깃털과 같거나 가벼우면 아아루로 가게 된다.




나는 그 옛날 이집트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언젠가는 하늘을 향해서 인상을 잔뜩 쓰고 욕지기를 했던 적이 있으니까 신성모독죄를 범했다.

거짓말은 한도 많이 해서 몇 번을 했는지 셀 수도 없다.

게으른 것은 무슨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제때제때 일을 끝내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꼭 마감시간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에야 처리한다.

도둑질은 꼭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물건을 훔쳐야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보니까 몇 년 전에 빌려와서 여태껏 되돌려주지 않은 물건이 보였다.

졸지에 도둑질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사람을 죽인 적은 없으니까 42가지 중에서 하나는 통과하려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 심장을 천칭저울의 이쪽 접시에 올리고 저쪽 접시에는 진실의 깃털을 올려보면 당연히 저울은 이쪽으로 기울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칵! 악어밥이다.

낙원은 고사하고 영원히 죽고 말 것이다.




그 옛날 이집트 사람들 중에서 낙원에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살았던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낙원에 갈 수 없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한 번 죽는 것도 두렵고 무서운데 죽어서도 악어밥이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맥이 빠졌을까?

시도 때도 없이 죽은 후에 과연 낙원에 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다.

제사장에게 물어보면 조금이라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뻔질나게 제사장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파라오 같은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겁을 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아주 위엄있게 통치했을 것이다.

파라오 옆에 사제가 딱 붙어 있어서 파라오의 말이 마치 신의 말인 것처럼 동의를 했을 테고 그 순간 파라오는 신처럼 추앙을 받았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만약 그런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그딴 것 안 믿는다고 큰소리칠 수 있었을까?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게 정말 다행이다.

나 같은 성격은 맘에 맞지 않으면 큰소리도 치곤 하는데 누가 신성모독죄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 것으로 잡아가지도 않는다.

대통령이 암만 뭐라고 해도 내 맘에 안 들면 그 말을 듣지도 않는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보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신앙적인 것도 내가 좀 이해가 되어야 믿는다.

내 심장의 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워야 살 수 있다는 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오히려 심장이 깃털보다 무겁지 않으면 죽는다는 게 맞는 말이다.

내 심장도 깃털보다 무거운데 하물며 나보다 더 강심장인 사람들은 죄다 지옥에 가야 하는가?

이런 터무니없는 것 믿지 않아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으니 좋다.

나는 역시 21세기 스타일이다.

그런데 가끔은 진실과 정의의 저울질을 좀 해 봤으면 좋겠다.

나에게 말고 그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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