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Feb 20. 2022

더 큰 바보는 혹시 내가 아닐까?

  

좋은 것이 좋다고 하지만 어떤 것이든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처음에는 정말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좋았던 것도 평범한 것이 된다.

더 지나면 구닥다리의 고리타분한 것이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아예 버려야 할 폐기물이 되고 만다.

버릴 때도 그냥 버릴 수가 없다.

돈 내고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있어서 이득이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본다.

손해 보기 전에 누군가에게 팔아넘겼더라면 더 나았을 텐데 선뜻 그러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고이 간직하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라며 마음을 달랜다.

나 같은 남자들에게는 기계나 컴퓨터 관련 용품들 중에 그런 것이 많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전에 사 두었던 옷들이 대표적일 것 같다.

조금만 살을 빼면 다시 입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계절이 바뀌면 대부분 재활용 의류박스에 넘겨진다.




요즘에는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장터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좋은 물건을 잘 쓰다가 크게 손해 보지 않고 남에게 되팔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에 고이 모셔두다가 몇 번 쓰지도 못한 채 내다 버리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때 팔았어야 했는데 괜히 간직했네.’라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럴 때 ‘그때’란 곧 나에게는 값어치가 떨어지지만 그것을 사는 사람에게는 값어치가 나갈 때이다.

내 입장에서는 나에게는 이제 필요가 없는데 그것을 돈을 받고 팔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반면에 그것을 사는 사람은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니까 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서 이제 막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이제 곧 가격이 떨어지는 그 절묘한 타이밍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타이밍을 알 수만 있다면 나는 최고의 장사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팔았어야 했는데’의 그때는 나에게 가장 좋았을 때이다.

산 정상의 최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그다음에는 내리막길만 있다.

‘그때’가 지나면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내리막으로 접어든 그때에 오히려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

내리막길 같지만 곧 올라가는 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믿는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눈으로 보면 내리막길 같은데 자신들의 특별한 눈으로 보면 오르막이라고 우긴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사람들 주위에는 이런 특별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은 골짜기가 깊으면 산이 높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급히 내려가는 것은 곧 급속히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 것이라며 큰소리친다.

분명 망하는 길인 것 같은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듣는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서로 누가 더 큰 바보가 되는지 시합하는 것 같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현대인들의 이런 모습을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으로 설명하였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보다 바보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높은 가격을 받고 내 것을 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때는 이성적인 판단은 제껴두고 충동적으로 결정한다.

더 큰 바보가 나를 한입에 물 수 있도록 내가 철저히 미끼가 되는 것이다.

더 큰 바보 하나만 잡으면 이때까지의 모든 고생은 다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큰 고기에게는 큰 미끼가 필요하니까 바보스런 결정을 작게만 하지 않고 크게 크게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자꾸 나 자신을 세뇌시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끈질기게 기다린다.

그러다가 때를 놓쳐버린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큰 바보는 오지 않는다.

그때서야 안다.

내가 가장 큰 바보였다는 사실을.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게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