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다

by 박은석


빚쟁이가 집에 찾아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너무 비굴해 보였다.

빚쟁이 앞에서 연신 머리를 숙이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지를 않나, 빚쟁이가 오는 것 같으면 딴 곳으로 피하기도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무슨 빚을 그렇게 많이 지셨나 의아했다.

어느 정도 머리가 컸을 때 집안 사정을 듣고 나서야 어느 정도 이해했다.

내가 태어날 때 우리 집은 꽤 넉넉했었다.

아버지의 수완이 좋아 농사도 잘 지으셨고 거기에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이 더해서 해마다 재산이 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더 큰 곳으로 나가야 한다며 시내의 커다란 시장에 가게를 하나 크게 여셨다.

그때가 우리 집이 가장 부유했을 때였고 내가 태어난 때이다.

모든 게 잘 풀리는 듯했다.

사장님 소리도 듣고 딸 셋을 내리 낳은 후에 아들까지 봤으니까 기분은 나날이 날아갈 듯하셨을 것이다.

아무도 몰랐다.

거기가 정점이었고 그다음은 내리막길이란 사실을.




아버지는 인심이 후한 사람이었다.

그런 분은 장사를 하면 안 된다.

장사를 해서 이익을 봐야 하는데 장사를 해서 남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셨다.

시장통에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에게 이 사람 저 사람 모여들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아버지는 넉넉한 인심을 쓰셨다.

크게 사채보증을 서 주신 것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예상하는 대로다.

그 사람은 그 길로 도망을 쳤고 아버지는 연대 보증인이었기에 고스란히 그 빚을 갚아야 했다.

가게를 정리하고 그동안 모았던 땅도 팔았고 집도 팔아야 했다.

도대체 어느 만큼이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감귤 과수원 1만 평이 고스란히 없어졌다고 하셨다.

감귤을 따면 갚을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도망간 그 사람을 찾는다며 반미치광이처럼 전국을 헤매셨고 졸지에 우리 집은 빚진 자의 집이 되고 말았다.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하셔야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려면 특별한 방법을 써야 했다.

그 방법으로 아버지는 일본으로 가는 길을 택하셨다.

친구 몇 분과 함께 몰래 일본으로 들어가셨다.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고 불법체류자가 되신 것이다.

하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은 달랐다.

친구분들은 잘 숨어들었는데 아버지는 일본 경찰에게 곧바로 잡히셨고 추방당하셨다.

국내로 송환된 아버지는 1년 가까이 감옥에 갇혀 지내신 후에야 풀려나셨다.

전에는 손만 대면 일이 잘 풀렸는데 그 후로는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는 동안 빚은 점점 늘어났다.

빚쟁이가 찾아와서 큰소리치고 간 날이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짐을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빚 다 갚고 5층짜리 집을 지어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내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집이 5층이었다.

그 꿈을 이루려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내 나이 스물두 살에 아버지는 천국으로 가셨다.

그때까지 갚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빚이 남아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어머니와 내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빚을 갚는 것이었다.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땅도 팔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제 빚 다 갚았다.” 하시며 “휴” 한숨을 쉬셨다.

빚 다 갚은 날 가슴에 막혀있던 벽이 뻥 뚫린 느낌이 들었다.

남은 것은 없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다시는 빚을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내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살면 살수록 빚이 생겼다.

돈을 빚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더 큰 것들을 빚지고 있다.

나에게 잘 대해준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 나를 참아준 사람들에게 진 용서의 빚, 나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진 사랑의 빚, 나에게 밥 한 끼 사 준 사람에게 진 인정의 빚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평생을 노력해도 다 못 갚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다0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