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by 박은석


오래전 북해도에서 청어잡이를 하던 영국 어부들은 어떻게 하면 런던까지 청어를 살아있는 채로 운반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죽은 청어와 살아 있는 청어의 가격 차이는 엄청났지만 청어는 성질이 매우 급하여서 잡히면 금방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어부가 런던까지 싱싱하게 살아있는 청어를 운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부들이 그에게 비결을 알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드디어 그 어부가 비결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청어를 운반하는 물통에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부들이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하지만 메기가 잡아먹는 청어는 기껏해야 두세 마리밖에 안 됩니다. 대신 그 통 안에 있는 나머지 청어들은 메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도망칩니다. 그러다 보면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게 됩니다.”




청어 입장에서는 좁은 통 안에 자신의 천적인 메기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그 통 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죽기 살기로 메기를 피해서 도망쳐야만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 청어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물에 걸리고 원치도 않는 곳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합니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메기 같은 놈이 내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 살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는데 어딘가로 가기는 해야 합니다.

그렇게 죽을 동 살 동 하면서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을 동 살 동 하면서 뛰어다녔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벌써 제풀에 지쳐서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텐데 뛰어다녀봤자 허사라고 했으면 벌써 잡아먹혔을 것입니다.




때로는 목표가 정확히 보이지도 않고 방향을 알 수도 없지만 무언가라도 하면서 몸부림을 치고 움직여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며 <삼십 세>라는 시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저도 서른 살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때만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른 즈음에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서른 즈음에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고 서른 즈음에 김광석은 노래하다 별이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 나는 서른 즈음에는 무엇을 했는지 내세울 게 없습니다.

그저 살았다고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열심을 내서 살았고 어떤 때는 마지못해 살았고 또 어떤 때는 그냥 살았습니다.

가만히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까 정말 열심히 살았던 때는 힘든 일이 있던 때였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몰려들었을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늦은 나이에 군 입대해서 나이 어린 선임병에게 인사하며 다녔던 때, 몸이 아픈 식구 때문에 괴로움이 더해갔던 때가 그런 때였습니다.

그 힘들었던 때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이번만 넘기면...’ 하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노래도 많이 불렀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때는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좀 나아지고 편안해졌을 때는 괜히 짜증이 났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투덜대곤 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힘든 일이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힘든 일이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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