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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28. 2022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다면 아직 젊은 사람이다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강의실에 앉아봤다.

이렇게 앉아서 강의를 들었던 적이 언제였나 헤아려보니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다.

서른 즈음에 새로운 공부를 하겠다며 들어온 학교였다.

여기서 5년에 걸쳐 대학원 과정을 두 번 공부했으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때는 어서 공부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했는데 밖으로 나가서 한 이십 년 지나고 나니 다시 이 자리가 그리워졌다.

공부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강의실의 이 자리가 뿜어내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뛰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친구들이 눈에 안 보이는 이유는 잠깐 화장실에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차임벨 소리가 울릴 것이고 그러면 친구들이 후다닥 뛰쳐 들어올 것이다.

두꺼운 가방을 들고 강의실 앞문으로 교수님이 들어오시면 이제 강의 시작이다.




강의실에서는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배우는 게 있다.

꼭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워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학(小學)>에 나오는 내용인데 공명선이란 제자가 증자의 문하에서 지내면서도 3년 동안 글을 읽지 않자 증자가 그에게 왜 배우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공명선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스승님께서 부모님이 계시면 개나 말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손님을 접대할 때 스승님께서는 공손하고 검소하게 그리고 정성껏 대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조정에 계실 때 아랫사람들에게 엄격하게 대하시지만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부족하지만 스승님의 모습을 통해서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공명선처럼 우리도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배움을 특별한 조건이 갖춰져야만 행해질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좋은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수업료가 비싸면 더 좋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집을 세 번 옮겼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맹자가 시장통에서 장사 놀이를 한 것은 배운 게 아닌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물건을 사고파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맹자가 무덤가에서 장례 놀이를 한 것은 배운 게 아닌가?

장례식만큼 예절교육을 잘 시킬 수 있는 때가 언제인가?

맹자가 서당 옆에서 책 읽는 놀이를 한 것만 제대로 배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맹자가 위대한 스승이 된 것은 어려서 집을 세 번 이사하면서 계속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도 배운 것이고 저것도 배운 것이다.



   

배우는 시간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젊게 만들어준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젊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젊은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계속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게 배움을 놓아버리는 그때가 바로 젊음을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몇 살까지를 젊다고 해야 하며 몇 살부터 젊지 않다고 해야 하는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다.

젊음과 젊지 않음의 차이를 단순히 나이로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움을 기준으로 하면 누가 젊고 누가 젊지 않은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다면 나이가 많아도 젊은 사람이고 배우기를 포기했다면 나이가 어려도 젊지 않은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계시다.

선생님이 계시면 그는 학생이고 아직 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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