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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25. 2022

뉴스를 볼 때는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난다.

그러면서도 뉴스를 보고 있다.

이상한 심리이고 이상한 행동이다.

내 눈이 찾아가는 곳은 굵직한 글씨가 돋보이는 곳이다.

글에는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 사람이 크게 다쳤다는 내용, 사람을 이용해먹었다는 내용들이 쓰여 있다.

육하원칙에 맞춰서 깔끔하게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뉴스가 잘 보여주지 않는 내용이 있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한 내용인데 뉴스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감성적인 내용은 뉴스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뉴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숫자이다.

몇 명이나 죽었는지, 몇 명이나 다쳤는지,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지, 얼마나 해 먹었는지, 앞으로 우리 경제에 끼칠 영향은 얼마나 되는지 등이다.

숫자가 적으면 별것 아닌 뉴스거리라 생각하고 숫자가 많으면 대단한 뉴스로 생각한다.




숫자가 많든 적든 간에 그 뉴스의 장소에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뉴스는 그 고통의 질량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한 사람이 겪는 고통과 백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 어느 게 더 무거울까?

뉴스는 당연히 백 사람이 겪는 고통이라고 할 것이다.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백 사람의 몸무게가 한 사람보다 백배나 더 많이 나가니까 고통의 중량도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그 한 사람이 바로 ‘나’라면 말이다.

내가 지금 괴로워 죽을 것 같은 상황이면 옆에 백 사람이 힘들어하는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다들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들의 고통을 다 모은다고 해도 내 고통의 하루치 분량도 안 되는 것 같다.

백 사람의 이야기보다 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뉴스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80억 명이 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은 땅덩어리다.

그러나 그 크고 넓은 지구도 나 하나 없어지면 없는 것과 같다.

내가 없는데 지구가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가 있어서 지구도 있고 내가 없으면 지구도 없다.

지구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지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지구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지구 한편에서는 누군가 아파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의 아픔이 아니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의 아픔이고 나의 아픔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의 아픔도 아프가니스탄의 아픔도 미얀마의 아픔도 남의 아픔이 아니라 나의 아픔이다.

그런데 뉴스는 그 아픔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식이 있다며 와서 보라고 한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뉴스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기자들은 분명히 뉴스에 아픔을 담으려고 했지만 뉴스가 완성되어 나왔을 때는 그 아픔들이 밝고 화사한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마치 우리는 혼란스러운 이 땅에 살고 있는데 뉴스는 천상의 소식을 들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뉴스가 아니라 딴 세상의 뉴스가 되어버렸다.

뉴스가 사람들의 아픔을 보여주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뉴스에서 말하는 것만 읽지 말고 그 행간을 읽으라고 했다.

말과 말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했다.

그러면 마치 비밀번호나 암호문처럼 숨어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뉴스의 행간에 숨어 있던 비밀번호와 암호문은 바로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좋은 세상인데 여전히 뉴스는 사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뉴스를 볼 때는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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