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청년에게 호통을 쳤다

by 박은석


그를 만난 것은 예배당 안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머리칼은 길고 몸은 야리야리했으며 피부는 하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는데 가끔 어깨가 들썩거렸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실성한 것 같기도 했다.

남들 다 일어서서 찬송을 하는데 혼자 엎드려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남들 다 일어설 때 일어서지 못하고 홀로 엎드려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일어나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하는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힘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힘을 낼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힘내라는 응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함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조용히 다가갔다.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나랑 같이 편안한 곳에 앉아 있자고 했다.

그랬더니 순순히 일어섰다.




어쩐 일로 왔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자기 이야기를 했다.

2년 동안 취업 준비를 해서 겨우 임시직을 얻었는데 어제 해고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자기 딴에는 일도 많이 하고 남들보다 더 빨리 끝내기도 해서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은 정규직이 되고 자기는 잘렸다.

그의 말이 그랬다.

아무에게도 자기가 잘린 것을 얘기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속상해서 하나님에게 따지려고 그랬는지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있는데 거기서는 보는 눈이 많으니까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교회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예배당에 앉아 있자니 속에서 욱하는 게 치솟아 눈물도 나고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마침 그때 엄청난 인물을 만난 것이다.

바로 나다.

나는 이런 청춘을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너 오늘 잘 걸렸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더니 스물여덟이라고 했다.

“이팔청춘 좋은 때네.”

그러면서 내 조카뻘이니까 말을 놓겠다고 했다.

내 말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래 뜨고 쳐다보았다.

너 같은 인재를 자르는데 직장 상사들이 손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봤냐니까 그러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자기도 이 직장에서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럼 잘 된 일이라고 했다.

회사 쪽에서 먼저 말했으니 실업수당도 잘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뭐가 그리 분하냐고 했더니 자기는 남들보다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잘리니까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직장 상사들 입장에서 네가 과연 꼭 필요한 존재라고 여겼을 것 같냐고 했더니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는 어차피 임시직이니까.

그 말을 듣고 내가 호통을 쳤다.

한 달을 일하든 두 달을 일하든 이 회사는 나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할 할 수도 있었지 않냐고 했다.




자기는 대학도 변변치 못했고 전공도 그저 그랬다고 했다.

직장에 들어가 보니 회사 규모가 작아서 자기는 딱 3년만 다니고 다른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나한테 야단맞을 말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았다.

지나간 날들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 못했던 것,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인생은 만들어 가면 된다고 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적어도 100권은 읽으면서 실력을 쌓으라고 했다.

시간 없다는 핑계 대지 말고 치열하게 살라고 했다.

직장을 잡으면 잠시 다니다 떠날 직장이 아니라 내 회사 내 기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라고 했다.

자기 스스로 치열하게 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도 어떻게 도와주실 수가 없을 것 아니냐며 호통을 쳤다.

신세한탄 그만하고 집에 가라고 했다.

다음에 혹시 다시 만나게 되면 치열하게 살아온 모습으로 만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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