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집에 왔더니 아내와 딸은 있는데 아들이 없었다.
친구 만나러 나갔다는데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한창 사춘기 시절인지라 매일 마주 대하는 식구보다 친구가 더 반갑게 여겨질 나이이다.
아들이 오면 밥을 같이 먹을까 하다가 기다리기도 지치고 입맛도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이나 할 생각이었다.
막 집 앞을 돌아 나오니까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연신 낄낄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보나 마나 게임을 하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잠깐 인사를 하고 막 지나갔는데 저 녀석들이 배가 고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 앞에 있는 중국집에 빈자리도 많이 보이길래 저 녀석들에게 짜장면이나 한 그릇씩 사 주고 싶었다.
아들을 불렀는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두 녀석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성큼성큼 뒤쫓아가서 두 녀석을 다시 불러세웠다.
“저녁 안 먹었지? 짜장면 사 줄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녀석 다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배고프지 않다며 괜찮다고 했다.
나로서는 선심도 쓰고 아들의 기도 세워주려고 했는데 두 녀석이 완강히 거부하니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러라고 하고서는 나도 내 갈 길을 갔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집에 가는 길에 치킨 생각이 나서 한 마리 사들고 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봤더니 아들은 이제 막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푸짐한 한상차림이었다.
혹시나 해서 “닭다리라도 좀 줄까?” 물어봤더니 밝은 얼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는 배고프지 않다며 그 좋아하는 짜장면을 사 준다고 해도 안 먹겠다고 했던 녀석이었다.
배부르니까 치킨은 안 먹을 줄 알았는데 닭다리 두 개를 뼈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도대체 배가 어떤 상태인지 저 녀석의 꿍꿍이속을 도무지 모르겠다.
조금 후에 아내가 나에게 “아까 아들에게 친구랑 같이 짜장면 사 준다고 했다며?”하고 물었다.
그 새에 집에 와서 제 엄마한테 얘기했던 것이다.
내가 “그랬는데 둘 다 안 먹겠다고 하더라.”라고 대답했더니 저쪽 방에 있던 딸내미까지 합세해서 “당연하지!”하며 깔깔대며 웃었다.
순간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아들에게 잘 해 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네 식구 중 세 명이 깔깔 웃는 것을 보고 내 행동을 돌아보았다.
잘못한 것은 없었다.
단지 내가 아들과 그 친구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열다섯 살 사내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아빠한테 이끌려 중국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지금 친구와 분위기 좋은데 괜히 아빠가 끼어든 것이다.
차라리 용돈을 쥐어주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았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좋아 보여서 상대방에게 권하였는데 그게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던 적이 꽤 많았을 것이다.
좋은 게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내 선의가 상대방에게 부담감을 준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받는 것이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 마음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나밖에 없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있으면 마음도 두 개이고 열 사람이 있으면 마음도 열 개이다.
내 마음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엄청 어려운 일이다.
내 모습을 닮은 아들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데 나와 전혀 다르게 생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