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은 나를 가혹하게 대한다

by 박은석


운명이 나를 가혹하게 뒤흔들 때가 있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가려고 했는데 착한 사람 잡아먹는 세상을 만나기도 하고 잘 준비해서 뭔가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시작과 동시에 문 닫아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남들이 다 좋다고 했는데 내가 뛰어드는 순간 안 좋아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정말 하늘을 향해서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불운은 거르지도 않고 차곡차곡 나에게 인사를 하고 간다.

반면에 행운은 건너뛰기하듯이 내 앞에서 껑충 뛰어 넘어간다.

오래전에 행운권 추첨을 할 때 알아봤다.

내 앞번호도 당첨되고, 내 뒷번호도 당첨되었는데 나만 쏙 빠졌다.

심지어 나보다 10번 앞에도 당첨되었고 나보다 10번 뒤에도 당첨되었다.

내 번호가 불려서 좋아했더니 남들에게 다 나눠주는 참가상 같은 선물이 돌아왔다.

나라는 인간은 남들에게 좋은 것은 다 양보하는 아주 너그럽고 운수 좋은 놈인가 보다.




일찌감치 일확천금 같은 것에는 신경을 껐다.

복권을 긁는다느니 어디에 투자를 해서 대박을 터뜨린다느니 하는 일은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내 몸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며 살아간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랐다.

살다 보니까 일한 만큼의 대가를 얻는다는 게 기적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 주택단지에서 10미터만 앞으로 가면 흔히 말하는 먹자골목이다.

그런데 이 먹자골목에 위치한 가게들이 너무 자주 바뀐다.

1년은 어떻게 버티는 것 같은데 3년을 넘기는 가게는 흔치 않다.

큰맘 먹고 시작한 사업이고 정말 열심히 일했을 텐데 빚만 지고 떠나가는 것 같다.

전에 설치했던 간판이 뜯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뜯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땀을 흘린다고 수확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 언젠가 부모님이 수박 농사를 지으셨다.

꽤 알맹이가 큰 수박들이 잘 영글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수박밭으로 우리를 부르시더니 친구들과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신이 나서 친구들을 불러와서 수박을 먹으며 장난을 쳤다.

태권도한답시고 앞차기 뒤차기 돌려차기로 수박을 깨고 부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시고서도 아무런 말씀을 안 하셨다.

나중에야 알았다.

수박을 수확하기로 했는데 그전에 태풍이 불어닥치는 바람에 수박을 팔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수박밭을 통째로 갈아엎으셔야 했던 부모님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1년 농사가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동안 흘린 땀과 수고에 대한 보상은 한 푼도 없었다.

땀을 흘린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말은 어떤 때는 맞는 말 같은데 어떤 때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 된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다.




운명이 나에게 가혹했기 때문에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는 못했다.

대학을 마치고 잠시 학원강사를 했을 때는 몇 달 치 월급을 받지 못했던 적도 있다.

당시에는 원장님을 만나면 내 눈에 힘이 팍 들어갔다.

그때도 나는 내 운명을 탓했다.

내가 하는 일은 왜 이렇게 꽉 막힐까 생각하며 속상해했다.

내 힘으로 뭐 좀 해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며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를 괴롭히는 그 운명도 가끔은 실수를 한다.

내가 플러스 더하기 플러스로 열심히 하면 운명은 마이너스 빼기 마이너스로 내 삶을 갉아먹는다.

그러다가 내가 플러스 곱하기 플러스로 더 열을 올리면 이놈의 운명은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로 자기도 열을 올린다.

어라?

내가 곱빼기를 얻는다!

나를 괴롭히던 운명이 자기도 모르게 나를 도와준다.

일한 것보다 훨씬 많은 대가를 나에게 준다.

하하하.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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