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에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학교는 아니었는데 그 친구의 학교가 우리 동네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하고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던 친구가 마침 내 친구였다.
친구랄 것도 없었다.
교회에 열심이었던 내 어머니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고등학생을 납치하다시피 팔짱 끼고 교회에 데려오셨다.
그때가 무슨 부흥회가 있었나 했을 거다.
아마 부흥회 강사였던 목사님이 엄포를 놓았는지 한 사람 데려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는지 어머니가 고등학생을 납치해 오셨다.
그날이 기억난다.
집에서 문제지를 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친구 한 명 데려왔다고 하셨다.
둘이 친하게 지내라고 하면서 어머니는 나가셨고 나는 졸지에 새로운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친구가 연줄이 되어서 ‘그 친구’를 알게 되었다.
깔끔한 얼굴이었다.
좀 두꺼운 테가 있는 안경을 썼던 것 같다.
안경을 안 쓰는 나로서는 사람들이 무슨 안경을 쓰는지 관심도 없고 기억도 안 난다.
성격은 차분했다.
바른생활맨 같은 분위기였다.
집안의 경제적 상황은 몹시도 가난했다.
아버지가 조그만 개척교회의 목사였다고 했다.
내 생각에 1년에 4번씩 내야 하는 등록금이나 제때에 내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같이 자취하는 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붙잡아온 친구를 통해서 듣기로는 둘이서 반찬도 제대로 해 먹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밥에 간장이나 말아서 먹든지 했을 거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하겠지만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그렇게 고등학생 때 집을 떠나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고 자취를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우리 집도 자취생을 둘 정도였다.
하여간 이 두 녀석을 만나 청춘의 인생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물론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들도 말이다.
그렇게 어울리던 친구들이 예닐곱은 되었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할 때라 내 방에 오면 ‘모닥불’도 부르고 ‘너의 침묵에...’로 시작하는 양희은의 노래들도 불렀다.
시간이 나면 우리 집 옆에 있는 동네 교회당에 가서 띵가띵가 거리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되면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겠다는 친구들도 서넛 있었다.
그 녀석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자기 아버지가 개척교회 목사이기에 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기왕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종을 희망할 줄 알았다.
그런 쪽으로 진로를 정할 수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면 괜찮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굳이 목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그 친구를 ‘새끼 목사님’이라고도 불렀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그 친구가 해수욕장에 갔다.
그날 너울성 파도가 그 녀석을 덮쳤다.
긴급하게 구조대가 다가갔다.
살았다 싶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랬다고 한다.
자기는 괜찮으니까 다른 사람을 먼저 구해달라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구조대가 내 친구를 건졌다.
물에 퉁퉁 불어버린 친구를.
소식을 들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멍청한 놈! 일단 자기부터 살아야지!’
그렇게 큰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그 친구가 잊히지 않는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그치지를 않는다.
친구를 보낸 후에도 나와 내 친구들의 마음에는 그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가끔 제멋대로 살다가도 그 녀석이 떠오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하는 마음이 든다.
내 친구였던 그놈 장한힘!
그놈은 자기 이름처럼 나와 친구들에게 장한 힘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