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긴 것도 멀쩡하고 몸도 건강하고 배운 것도 그런대로 괜찮고 어지간한 운동도 꽤 한다.
장단점을 말하라고 하면 단점은 찾지 못하고 장점은 줄줄이 대곤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굉장한 약점이 있다.
다름 아닌 고소공포증이다.
이놈은 평상시에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내가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리고는 내 마음에 ‘떨어지면 큰일 날 거야.
발이 미끄러질 수 있어.
발을 디딘 곳이 무너질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준다.
초등학생 대 야트막한 동산을 올라간 적이 있는데 자꾸 굴러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 붙잡을 나무도 거의 없는 풀만 소복이 덮인 민둥산이어서 그런지 미끄러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야말로 땅바닥에 붙다시피 해서 겨우겨우 동산을 올라갔다.
그날 이후부터 사방이 휑하니 트인 곳에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 큰 곤욕이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없어질 줄 알았던 그 증세는 도리어 나이가 더해가면서 더 커졌다.
고층빌딩의 전망대에서도, 바닥을 유리로 깔아서 아래를 볼 수 있게 만든 스카이웨이에서도,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탈 때도 어김없이 고소공포증이 찾아왔다.
심지어는 깎아지른 절벽을 찍은 사진만 봐도 심장이 ‘쿵’ 한다.
그런 곳에서 번지점프를 하거나 행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 같다.
고소공포증이 오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눈은 아찔해지면 손에는 식은땀이 잡힌다.
다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사시나무처럼 발발 떤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고 발이 땅에 붙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한다.
끔찍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머리에서는 분명히 괜찮다고 사인을 보내는 것 같은데 몸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
산에 오를 때면 가급적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은 피하고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벽에 놓인 출렁다리, 철제다리를 건너야 할 때도 있고, 동아줄을 잡고 암벽을 올라야 할 때도 있다.
정말이지 그 앞에서는 죽을 맛이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을 수도 없다.
정상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
그럴 때 나는 밧줄이나 나간의 손잡이를 꼭 움켜쥔다.
뭐라도 붙잡아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천천히 걷는다.
눈은 될수록 위만 쳐다본다.
아래는 안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기도한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지요?”하면서.
사람들은 나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아까 저 위에서 너무 여유 있게 경치를 즐기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나의 위장전술이 완벽히 통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나는 고소공포증을 숨기고 폼나게 산행을 마친다.
놀이공원에서는 다른 방법을 쓴다.
롤러코스터의 대기 줄이 줄어들면 긴장감이 증가한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면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열차가 천천히 올라가면서 ‘띠띠띠띠’ 소리가 날 때는 엄청나게 심호흡을 한다.
순간 ‘철컥’ 멈출 때 내 심장도 멎는다.
고함치는 소리와 함께 기차가 낙하하면 나는 재빨리 눈을 크게 뜬다.
열차가 가는 방향을 노려보면서 입으로는 엄청난 괴성을 지른다.
제일 재미있게 타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의 순간이 후딱 지나가고 내가 탄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살았다! 고소공포증은 피할 수가 없다.
맞닥뜨려 건너가야 한다.
때로는 안전장치를 꽉 잡고 하늘만 쳐다보면서 걸어가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눈을 크게 뜨고 곤두박질하는 땅을 노려보면서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나는 한 번, 또 한 번의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