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인생, 잃어버린 시간은 없다

by 박은석


나는 스물다섯 살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해서 군복무를 시작했다.

친구들처럼 스물한두 살에 군복무를 했어야 했는데 여러 사정들 때문에 늦었다.

스물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한 살 밑의 동생이 먼저 해병대에 입대하였기에 나름대로 집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외의 여러 고민들 때문에 군입대를 미루고 휴학과 복학을 이어 먼저 졸업을 했다.

내가 1년 휴학하고 복학하는 동안에 내 친구 중의 하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나와 같은 학기에 복학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존재하고 있던 6개월 방위의 그 찬란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것이다.

군필자 옆에서 미필자인 내가 졸업사진을 같이 찍었다.

차라리 늦게 입대할 처지였기에 아예 장교로 가자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 4학년을 마칠 즈음에 학사장교 시험에 도전을 했다.

당시에는 장교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




학사장교 시험을 치르는데 어떤 놈들이 왔나 둘러보니까 저쪽에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친구가 보였다.

‘저 놈은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시험도 보고 체력검사도 하고 느긋하게 발표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그 친구는 합격하고 나는 떨어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시험을 봐서 불합격할 수는 있지만 정원 미달되는 시험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텐데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인생의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나에게만 인생이 참 가혹하게 여겨졌다.

어쨌든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입대를 했다.

논산훈련소에서 기초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홍천에서 후반기교육으로 8주 동안의 운전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더 이상 먼 곳으로 가지 않고 후반기교육 훈련소 근처에 있는 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운전병은 어느 부대에 가든지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운행이 있으면 부대 밖으로 나올 수도 있었고 운행을 하기 전에는 의무적으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운전도 2시간 이상 시킬 수 없었다.

그러니 운전병은 너무나 부러운 보직이었다.

그런데 하필 내가 배치된 부대는 기갑부대였다.

전차와 자주포, 장갑차가 윙윙거리며 지나가는 부대이다.

그런 부대에서 자동차 운전병은 정말이지 개밥의 도토리 같은 기분이었다.

배급되는 간식에도 차등이 있을 정도였다.

내무반에서의 차별도 있었다.

병장이 되었을 때 동기 중의 하나가 나에게 말을 해줬는데 자기네는 밤에 옥상에 올라간 적이 많았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다.

고참들도 자기들보다 서너 살이 많은 나에게 부담감이 들었던 것 같다.

하기는 중대장이 나보다 한 살 어릴 정도였으니 내가 불편한 것 못지않게 그들도 불편했을 것이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충성!”을 외치며 경례를 붙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내 속에서도 욱하고 터져 나오는 것들이 있었다.

한번은 내무반에 각 잡고 앉아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내 대학 동기가 나왔다.

아나운서였는데 그때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뒤처진 것 같았다.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내가 나이 어린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때도 있을 텐데 미리 그런 연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것을 주장할 수 없을 때도 올 텐데 군 복무 시간이 그런 미래의 시간을 훈련하는 시간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보잘것없는 보직 같지만 내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고 보니까 의미 없는 인생, 잃어버린 시간은 없었다.

모두 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들 때문에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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