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남매 중 4번째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가 셋이고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지만 그 시절 내 고향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식구였다.
큰누나에서부터 막내까지는 11살 차이가 나고 그사이에 두세 살 터울로 4남매가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현상은 하나 건너 하나씩 친하게 지냈다.
그러니까 나는 바로 밑의 동생과 바로 위의 누나와는 엄청나게 싸우면서 자랐지만 두 단계 위의 둘째누나와 두 단계 밑의 막내동생과는 애틋한 동지의식 비슷한 것을 공유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사소한 다툼은 큰누나의 눈초리 한 번에 잠잠하게 되었었다.
어렸을 적에 큰누나는 어머니 못지않은 어른이었다.
그런가 하면 티격태격 벌어지는 다툼에는 어머니의 빗자루가 해결책이 되었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방 청소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우리를 야단치시려고 회초리 대신 빗자루를 두셨던 것 같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고 금방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다가 우리가 다투는 모습을 아버지께 들키는 날이면 그때는 정말이지 반 죽는 날이었다.
일단 아버지는 우리 중에 누가 잘못했든 간에 우리 6남매를 전부 부르시고는 일렬로 무릎 꿇고 앉게 하셨다.
집에 있는 의자를 모두 가지고 와서 각자 하나씩 들게 했다.
두 팔 번쩍 들어 올리는 게 쉽지 않아 조금이라도 내리면 불호령을 내리셨다.
무릎이 저리고 팔이 아프면 막내부터 시작해서 울먹거렸다.
잠깐 팔을 내리고 잘못했다며 용서해달라고 손을 싹싹 빌기도 했다.
그렇게 기합을 받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아버지의 일장 훈계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어지는 아버지의 훈계는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그때쯤 되어야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박씨가문의 아들로 살아가려면 슈퍼맨이 되어야 했다.
공부도 잘해야 하고,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하고, 친구들과 쌈박질할 때는 얻어맞지 말아야 하고, 달리기도 잘해야 하고, 글씨도 잘 써야 하고, 웃어른께 인사도 잘해야 했다.
지켜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버지는 사람 인(人) 자를 공책에 쓰시고서는 작대기가 하나면 넘어지는데 두 개가 서로 기대니까 설 수 있는 것이라며 서로 우애 있게 지내고 도움을 주고받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 낳고 돈 낳았지 돈 낳고 사람 낳은 게 아니다.”라는 말씀도 하셨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씀도 하셨다.
아버지의 훈계 레퍼토리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꼭 필요한 말씀들만 골라서 하셨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에게는 특별히 큰아들이니까 우리 집안의 기둥이라며 기둥이 쓰러지면 안 된다고도 하셨다.
훈계의 말씀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으로도 충분했다.
집에서까지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훈계는 어린 내가 지키기에는 너무나 고차원적인 말씀이었다.
나는 그저 그 야단맞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아버지께서 반복해서 들려주셨던 훈계의 말씀들이 내 맘속에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그 하나하나의 내용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 말씀들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까 방황끼 많았던 시절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아버지의 말씀이 잔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잔소리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잔소리는 나를 살리는 산소리였다.
이제는 누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훈계를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좋냐고?
아니다.
잔소리 들을 때가 좋았다.
그때가 좋은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