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한 나의 대응 방식

by 박은석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에게 붙잡혀 근 8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송환된 제임스 스톡데일(James Bond Stockdale)이라는 미국 장교가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숱한 군인들이 죽어 나갔는데 그는 살아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지옥 같은 상황을 견뎌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를 많이 생각하면서 그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대입하였다고 한다.

에픽테토스의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나에게 닥친 운명을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지레 판단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설령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신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셨다고 믿으라는 것이다.

나는 신께서 만든 연극의 배우일 뿐이니까 내가 맡은 배역에 충실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몹시 힘들다고 하는 이 상황도 신께서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나에게 만들어 놓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숙명론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넋 놓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신은 선하기 때문에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해 신은 선한 결과를 만드실 것이라고 믿으라는 것이다.

냉혹한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이되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는 말라는 말이다.

사실 포로로 붙잡힌 미국 군인들 중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곧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베트남과 미국의 국방력을 보면 베트남 전쟁은 금방 끝날 것 같았다.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미국 측에서는 어떻게든 붙잡힌 자기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믿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풀려나겠지, 부활절이 되면 풀려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그런 날이 와도 수용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포로로 잡힌 그들의 마음에는 절망이 하나씩 늘어만 갔다.

그 절망들이 쌓여 그들은 결국 목숨줄까지 놓아버렸다.




스톡데일의 생각은 어땠을까?

자신이 언젠가는 수용소를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은 점에 대해서는 옆에 있는 동료 포로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로로 붙잡힌 자신의 삶이 기적처럼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절망하며 주저앉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고통의 순간이 언젠가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나의 삶이 수용소에서 마감하는 것이라면 수용소에서 끝까지 장렬하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나의 삶이 수용소에서 풀려나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면 그때는 수용소의 경험을 가지고 또 다른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의미 없는 인생이 하나도 없고 치워버려야 할 환경도 하나 없다.




가끔 나에게 주어진 환경 때문에 억울하고 미안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더 좋은 환경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더 좋은 아빠가 되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것도 나의 욕심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면 되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면 된다.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고 저런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희망을 가지되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이다.

혹시 기적 같은 날을 맞이하면 더없이 좋겠고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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