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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5. 2022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듯 인생을 살고 있다


동유럽의 불가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불가리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종종 혼란을 겪는 일들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불가리아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같은지 다른지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때 불가리아 사람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 여행자는 ‘옳커니!’하면서 자신과 뜻이 같은 줄 안다.

그런데 불가리아 사람의 다음 행동을 보면 영 딴판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반대로 불가리아 사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여행자는 자신과 뜻이 다른 줄 알고 마음을 접는다.

그러면 불가리아 사람이 왜 그러냐고 따져 묻는다.

불가리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면 상대방의 말에 반대한다는 의미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상대방에게 동의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런 우스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내가 겪은 경험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많이 주는 건 사실이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처신하면 일처리도 쉽게 되고 효율성도 좋다.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발전한 노하우들이 모이면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런 발전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들은 철저히 공격을 당한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다른 방법이 아니라 아예 틀린 방법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상대방이 물어볼 때 긍정한다면 고개를 끄덕여야지 왜 좌우로 흔드냐고 야단을 친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는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형성되어 있는 문화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떠나 다른 길로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좌우로 흔드는 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을 가지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서 다 웃는 게 아니다.

큰소리를 친다고 해서 용감한 것도 아니다.

너무나 슬퍼서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곡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허허 웃어버린다.

너무나 슬픈데 슬픔 때문에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힘이 남아돌아서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나 무서운데 겁먹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일부러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 내가 그렇게 한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오금이 저려오는데 그때 일부러 크게 고함을 지른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처럼 깔깔댄다.

하지만 속마음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왜 이것을 타서 이렇게 고생하는지 후회도 하고 다시는 안 타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포장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밥 먹었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네, 먹었어요.”라고 대답한다.

뭘 먹었는지는 말 안 한다.

조금 전까지도 아이들에게 꽥꽥 소리 지르고 있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니까 세상에서 제일 상냥한 사람처럼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으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크고 있다고 한다.

옆에 있는 아이들이 당황할 만도 하다.

어느 모습이 진짜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인지 분간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렇게 포장하는 기술 덕분에 인류 문명이 발전해 왔다.

포장지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알아맞혀보려고 갖은 애를 쓰다 보니 마음을 읽는 눈이 발달했다.

아예 포장지 안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엑스레이도 개발했다.

들키기 싫으니까 마음속 더 깊이 숨기는 실력도 늘었고 엑스레이에 찍히지 않도록 꽁꽁 싸매는 기술도 늘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쪽에서는 감추고 한쪽에서는 계속 찾아내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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