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서 자녀에게 바라는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할 말이 있다.
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온 것보다 더 행복했으면, 더 편안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내가 겪었던 힘든 일들은 겪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어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가?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격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난바다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헤쳐 나와야 한다.
부모인 나로서는 육지에서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제발, 제발...” 뇌아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인생을 이렇게 살면 행복할 거야”라며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지혜의 책을 남겨주었는데 나는 그런 것도 줄 수 없을 것 같다.
강남의 부동산 부자들처럼 건물 한 동, 아파트 한 채도 물려주기 어려울 것 같다.
나중에 저 아이들이 “우리 부모님이 우리에게 뭐라도 좀 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의기소침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또 역사 속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인물이 누가 있었을까 찾아본다.
퍼뜩 떠오르는 인물 중에 다산 정약용이 있다.
그는 정조대왕 시절에는 잘 나가던 인물이었는데 정조대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유배형을 받아 무려 18년 동안 전라남도 강진에서 지내야 했다.
한창 자녀들 뒷바라지를 해야 할 나이에 가문은 풍비박산이 났고 아비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평생 공부하고 연구하던 양반이었으니까 유배지에서도 엄청난 독서와 집필을 이어나갔다.
<목민심서>와 같은 대작이 나온 것도 바로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데 집 식구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집 식구들은 너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
다산은 가끔씩 자신에게 종이를 좀 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내곤 했다.
종이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에 충분한 양의 종이를 보내줄 수가 없었다.
한번은 그의 부인이 자신이 결혼할 때 입고 왔던 붉은 치마를 보내주었다.
그 치마를 받은 정약용은 그것을 반듯하게 잘라서 책을 만들었다.
결혼할 때 입었던 빨간 옷이 이제는 노을빛이 되었다며 <하피첩(霞帔帖)>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안에 자식들에게 들려줄 말을 적어 놓았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왔네.
천리 먼 곳에서 마음을 담아 보냈구나!
오랜 세월에 붉은빛은 바랬는데 늙은 내 모습 같아 처량하구나.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고 자식들에게 줄 글귀 두서없이 몇 자 적었네.
바라건대 어버이 뜻 잘 헤아려서 맘에 깊이 새겨두고 살아가거라.”
자신이 죄인이 되고 집안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자녀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논밭을 주지는 못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는 데 재물보다 소중한 두 글자를 주겠다.
하나는 근(勤)이요 또 하나는 검(儉)이다.”
다산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선한 것은 무엇인가? 미덕이란 무엇인가? 정의와 사랑,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며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라!”라는 짧지만 묵직한 말을 보내주었다.
“이것으로써 아비는 아비의 도리를 다했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써서 보낸 <하피첩>을 받은 자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확하게 알 방법은 없지만 내 생각에는 분명히 자녀들이 아버지인 다산의 마음을 헤아려서 자신들의 삶을 정리하고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자녀들에게 남겨줄 최고의 유산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내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