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다

by 박은석


저쪽 방에 문을 닫고 누워 있는 딸아이가 안쓰럽다.

스물다섯 명의 반 아이들 중에서 절반이 저렇게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한창 재잘거리면서 청춘을 보낼 시기인데 생활의 대부분이 닫혀버린 것 같다.

밤을 새우며 친구들과 인생 이야기를 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따라 부르고 별을 보며 꿈을 키울 나이인데 그것들을 모두 빼앗긴 것 같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인데 너무 아깝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있어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은 어떻게든 이어간다.

새 학년이 되어서 아직은 반 분위기가 어색하기는 하겠지만 아이들은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꾸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지금의 이 답답한 시간들도 좋은 추억거리로 남지 않을까?

지금의 이 시간들 때문에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인 스물네 살 때부터 무려 13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낸 여성이 있었다.

폐결핵과 척추 질환 때문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의 사람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간단하다.

“저 혼자 화장실 가는 거요.” 그녀도 그랬다.

하지만 그 소원이 실현될 것 같지 않자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거기서 그만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에게 자원봉사자가 생겼다.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이 여성에게 친구가 되어줘도 괜찮냐고 물었다.

사람 자존심을 죽이고 또 죽이는 질문이었다.

그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노래도 불러주고 좋은 말도 들려주었다.

첫 만남이 지나고 두 번째 만남이 지나고 세 번째 만났을 때 그 청년이 그 처녀에게 기도를 해 주겠다고 했다.

여인은 신앙은 없었지만 그러라고 했다.




“하나님, 제발 이 친구의 병을 고쳐주십시오.

이 친구의 병을 낫게만 해 주신다면 제 생명을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제발 낫게 해 주십시오.”


귀를 의심하고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기도였다.

기도를 마친 후 그 청년은 “단 3일 만이라도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라며 청혼하였다.

그 청년의 부모가 들었다면 기절초풍할 이야기이다.

그 처녀의 부모가 들었다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할 이야기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그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도 하였다.

사랑을 시작하자 처녀의 몸도 기적처럼 조금씩 낫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불편한 몸을 추슬러가면서 글을 썼다.

남편은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 곁에서 그녀의 글을 교정하며 충실한 비서 역할을 하였다.

<빙점(氷點)>, <총구>, <양치는 언덕>을 쓴 일본의 여류 작가 미우라 아야꼬와 그의 남편 미우라 미쓰요의 이야기이다.




절망과 죽음의 문턱에서 그녀가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고칠 수 없는 질병과 아픔 속에서 태어났다.

만약 그녀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 병상에 누워있지 않았다면 그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의 사랑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그와 사랑을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

아픔은 환영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아픔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 삶에 있어서 좋은 일들은 때로는 아픔을 통해서 온다.

그 사실을 알기에 미우라 아야꼬는 <아프지 않으면>이라는 시를 즐겨 읊었다고 한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전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보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다.

아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아프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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