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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0. 2022

목련이 필 때 가보고 싶은 곳, 중남미문화원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는 아주 특별한 곳이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조각공원이 어우러진 중남미문화원이 바로 그곳이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아주 약했을 때 외교관으로서 중남미 여러 나라를 담당하셨던 이복형 원장님과 그의 부인 홍갑표 여사님이 만드신 곳이다.

내가 중남미문화원을 알게 된 것은 한때 인터넷방송국의 영상편집 일을 했던 2002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미 지역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려다가 우연히 중남미문화원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인터뷰를 위해서 방문했었다.

그 후로 1년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방문하였다.

봄여름가을겨울 언제 가더라도 운치가 있지만 가장 분위기가 좋은 때는 목련꽃이 화사한 4월 10일 어간일 것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에 박물관, 오른쪽에 미술관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조각공원이 펼쳐지고 조그만 예배당과 카페도 있다.

천천히 둘러보면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




박물관에서는 중남미의 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고 미술관에서는 강한 색채의 그림을 보며 흥겨운 음반과 알록달록한 소품들을 구할 수도 있다.

중남미 지역의 예술가들이 기증한 조각들을 눈으로 보며 지구 건너편 사람들의 미적 감각을 생각해보는 것도 즐겁다.

혼자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가지고 싶으면 조각공원 한 편에 만들어진 예배당에 들어가서 잠시 앉아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잔디밭에서 풀을 뽑는 할머니를 만날 수도 있다.

그 할머니를 만나면 깍듯하게 인사를 드려야 한다.

중남미문화원의 기획자이자 설립자이신 홍갑표 여사님이시다.

정말 그분을 만나는 날이면 그날은 계 타는 날이라 생각해도 좋다.

무조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풀 뽑던 일손을 멈추시고 걸걸한 목소리로 중남미문화원의 역사를 들려주실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홍갑표 여사님의 인생은 그야말로 수십 편의 드라마 같다.

몰락한 양반집 막내딸로 태어난 이야기, 공부는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기에 대한민국 여성 1호 신문판매원이 되어 스스로 학비를 벌었던 이야기, 집에 방을 칸칸이 나눠서 사글셋방을 놓았던 이야기, 남편에게 외교관의 꿈을 꾸게 한 이야기, 중남미의 대사가 되어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생하는 우리 동포들을 돌보았던 이야기, 한인교회를 만들어 때로는 전도사 역할까지 했다는 이야기들이 술술 펼쳐진다.

어떤 선견지명이 있었을까?

은퇴하고 노년이 되면 살려고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가 있는 땅을 알아본 게 바로 향교 옆에 있는 그 땅이었다.

그 땅을 사서 개간을 하고 좋다고 하는 나무들을 심어놓고 중남미로 떠나갔었는데 그게 지금 아름다운 동산이 된 것이다.

서울보다 북쪽에 있는 곳이니까 땅값이 저렴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여사님이 중남미에 계셨을 때는 그 지역이 정치적으로 무척 혼란스러웠고 내전도 많이 일어났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 온갖 골동품들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꽤 괜찮은 물건들도 너무나 값싸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여사님은 쌈짓돈을 털어가며 그 골동품들을 하나씩 사들이셨다.

때로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지역을 뚫고 지나가서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모은 물건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국에 들여보내 이렇게 커다란 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남들 같으면 이 문화원이 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여사님은 중남미의 문화를 알리는 공간이면 좋겠다며 이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셨다.

참 고마운 분이다.

그런 위대하신 여사님께서 나를 홍보대사라고 불러주신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

이번 봄, 목련이 피는 때에 맞춰 그곳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물관 외부, 박물관 내부, 미술관, 조각공원. 사진은 중남밈문화원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
+ 홍갑표 여사님의 자서전 적 에세이 <지금도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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