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Mar 28. 2022

조금 불편하더라도 예의를 지키는 게 낫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인지 담배냄새가 싫다.

그런데 우리 동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길목에는 여지없이 애연가들이 몰려든다.

지하철 출입구 10미터 이내에서 흡연하게 되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는데 안내문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을 뿐 단속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담배냄새도 싫지만 땅바닥에 버려진 꽁초들과 뱉어 놓은 침들을 보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예 그 골목길을 피해 돌아다니기도 한다.

골목에 자리한 식당 주인이 종종 나와서 바닥에 버려진 꽁초들을 치운다.

자기 가게 앞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해 보려고 꽁초를 버릴 꽁초통을 준비해 놓기도 하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바닥에 버린다.

이상한 게 길거리에 음식물이나 휴지 같은 쓰레기들을 버리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인다.

하지만 담배꽁초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

하여간 담배만 입에 물면 양심은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내 어릴 적만 하더라도 담배나 술은 어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기호식품이고 취향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행할 때도 예의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따라주는 술을 한 손으로 받아 마시는 젊은이는 없었다.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른들 앞에서 맞담배를 피는 젊은이도 없었다.

예의상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고개를 돌렸던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였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괜찮다고 자연스럽게 앉아서 먹고 마시라고 하면 그때에야 조금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마을에서 어느 어른으로부터 예의 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예의를 잘 지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을 넘어서 우리 집안이 가정교육이 제대로 된 집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행위였다.




예절이 우리의 삶을 규정할 때가 있었다.

삶의 모든 행위에 예절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예절의 잣대보다 길어도 안 되고 짧아도 안 된다고 강요했다.

그러다 보니까 예절은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나아가 예절 같은 구시대의 유물은 세계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들처럼 예절이란 것은 싸그리 없애고 새로운 질서와 관계를 세우는 게 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어떤 운동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인 예절의 모양과 형식이 사라지거나 변형되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가 덩치가 커지자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살이에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어졌다.

내 인생 내가 살아가는데 당신이 웬 참견이냐고 따져 묻는 세상이 되었다.

각자가 자기 마음에 편한 대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막 가는 세상이라지만 예의 없는 모습을 보면 인상을 쓰게 된다.

나의 핏속에 여전히 동방예의지국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이 넓은 도시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바다 한가운데의 섬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는 그들과 거미줄처럼 얽혀서 살고 있다.

내가 무례하게 대했던 사람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친구의 친구일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과의 관계다리가 서너 개만 넘어가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과 연결된다고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내가 편하다고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된다.

내가 무례하게 행한 일은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나에게로 온다.

지금 당장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를 죽이고 예의를 지키는 게 낫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충분히 증명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