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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30. 2022

모르면 배워야 하고 알면 더 배워야 한다


지식은 한도 끝도 없다.

똑 부러지는 정답이라고 하지만 정답이 아니고 근사치일 경우가 많다.

30센티 자를 대고 볼펜으로 선을 그어놓고서는 직선이라고 했는데 크게 확대해 보니까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선이었다.

선이라고 해서 잉크가 끊기지 않고 다 묻은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에 잉크 자국이 끊겨 있었다.

선처럼 보였을 뿐이지 완전한 의미로서의 선이 아니었다.

어쩌면 완전한 직선을 긋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불가능한 일이 될 것 같다.

직선에 대해서 뭐 좀 안다고 했는데 전혀 아는 게 아니었다.

직선을 구할 수도 없는데 직선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차라리 직선이라는 개념을 몰랐다면 이렇게 머리 아픈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를 알면 열을 깨우친다는 말을 똑똑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아야겠다.

하나를 제대로 알려면 열 개를 더 깨우쳐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겠다.




1년은 365일의 날들로 구성된 줄 알았다.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1년은 365일 하고도 얼마의 시간이 더 있었다.

그래서 4년에 한 번은 윤년이라고 해서 1년을 366일로 지킨다고 했다.

새로운 지식을 배웠다.

하지만 백년이 지나면 그 계산만으로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100년으로 끝나는 해는 4의 배수가 되는 해이지만 윤년으로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1년의 날짜 계산이 끝난 줄 알았는데 또 틀어진다.

그래서 400의 배수가 되는 해는 또 윤년이다.

그래서 1700년, 1800년, 1900년은 윤년이 아닌 해였기에 365일로 지켰지만 2000년은 400년의 배수이기에 윤년이 되어 366일로 지켰다.

하지만 이것도 몇 천, 몇 만 년이 지나면 또 달라질 수 있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이 1년이란 시간인데 먼 미래에는 그 돌아가는 속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 가서 또 배워야 한다.




내가 뭔가 좀 안다고 하면 곧바로 모르는 게 보인다.

아예 몰랐을 때는 생각조차 안 했던 것이니까 안다 모른다 말하지도 않았을 텐데 한 가지를 알게 되니까 그 뒤에 있는 몰랐던 게 보이는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온다.

1 더하기 1이 2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바꿔서 말하면 바로 그전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래서 뭘 좀 안다고 하는 말은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말과 같다.

인류 최고의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의 벽에 쓰인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 수 있겠는가?

세상 이치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무지하다고 했다.

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이다.




논어 팔일(八佾) 편을 보면 공자가 여러 유식한 사람들 앞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사람들은 평상시에 공자가 제사에 대한 말을 많이 했으니까 그 분야에서는 꽤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하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공자는 제사를 지내는 내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공자가 무식한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하였다.

제자들이 궁금해서 공자에게 왜 그러셨냐고 물어보자 공자의 대답이 명언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매번 옆사람에게 물어보면서 하는 게 예(禮)이니라.” 공자는 몰랐던 게 아니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본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더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알면 더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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