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Apr 17. 2022

정치와 종교는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는 정치와 종교 얘기를 하지 말라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정치와 종교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같은 정당을 지지하거나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는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생각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말을 한다면 5분도 견디기 힘들다.

정치는 분명 사람들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장치인데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종교는 분명 고차원적이고 선하게 살기 위해서 믿는데 때로는 종교 때문에 인간성이 망가지고 악으로 치닫기도 한다.

정치나 종교가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자신과 관점이 같으면 맞다고 하고 자신과 관점이 다르면 틀리다고 하는 현상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틀렸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아무리 자신이 잘못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대놓고 “너는 틀렸어!”라는 말을 들으면 발끈하며 저항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명확하게 구분하여 어느 것은 맞고 어느 것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바른생활이라는 것을 배우지만 바른생활이 꼭 맞는 삶이라고 할 수도 없다.

과거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는 공산주의가 가장 완벽한 정치체계라고 했다.

공산주의에 불만을 가진 반동분자는 솎아내야 완전한 공산주의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따라온 국민이 바른생활을 하려고 했다.

공산주의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찾아서 솎아내려고 혈안이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어느 지역에서는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를 고발한 일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부모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그 소년은 영웅이 되었다.

당국에서는 바른생활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맞는 삶은 아니었다.

그 소년의 삶도 망가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만 맞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고 한 결과 남도 잃고 나도 잃고 말았다.




종교 생활을 하면 끊임없이 어느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자신이 믿는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게 살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작동된다.

그래서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착하고 인심이 후하고 정이 많다.

동네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다.

하지만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자기 종교가 제일이라고 주장을 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사람이 되고 만다.

자기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힘으로라도 굴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신이 제일 강한 신이고 나머지는 허드레 신이라고 여긴다.

그것들은 없어져도 무방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교와 허구한 날 싸우려고만 한다.

자기 종교에서 가르치는 지고지순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는 기억하지도 않는다.




정치와 종교는 강압적으로 이식시킬 수가 없다.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지지자들은 자기 정당이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패전국 국민들이 섬기던 종교를 싸그리 없애버릴 수는 없다.

강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싹처럼 정치와 종교는 밟으면 끝날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다시 솟아난다.

로마 제국의 지도자들은 현명하게도 정복지의 종교를 인정했고 정복지의 정치체제도 어느 정도 눈감아 주었다.

로마에서 총독을 보내서 관리만 제대로 하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로마가 천년 제국을 이어가게 된지도 모른다.

어떤 정치가 더 좋은 정치인지는 목소리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살면서 겪어보면 알게 된다.

어떤 종교가 좋은 종교인지는 싸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정치든 종교든 그것들은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르면 배워야 하고 알면 더 배워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