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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31. 2022

평범한 날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날이 된다

    

1년 365일의 매일은 하루 24시간이라는 균등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중에서 어느 하루를 콕 집어서 특별한 날로 삼는다.

우리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4월 2일은 명절도 아니고 공휴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호적상으로 내가 태어난 날이다.

실제로는 내 생일이 아니지만 그날이 되면 핸드폰에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엄청나게 많이 찍힌다.

그 메시지들은 모두 장사꾼들이 보낸 것이다.

여하튼 다른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날인데 나에게는 엄청난 의미로 다가오는 날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대단한 날인데 나에게는 그저 그런 날로 지내는 날도 있다.

해가 떨어지고 잠자리에 누워서 ‘오늘은 뭘 했지?’라고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날이 있다.

어쩌면 내 인생의 대부분의 날들은 그렇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없는 날들일 것이다.

그저 그런 날 말이다.




제목을 본 순간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고른 책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작가 페터 한트케가 쓴 <어느 작가의 오후>라는 소설이다.

중편소설이니 분량도 만만해 보였다.

일단 제목에서 ‘작가는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해 주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작가가 오전에 글쓰기를 마치고 오후에 잠깐 산책 겸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이야기였다.

‘뭔가 있겠지, 있겠지’ 했는데 그렇게 그냥 끝나버렸다.

‘내가 딴생각하느라 중요한 것을 놓쳐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역시나 똑같았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인생의 갈등, 국가와 사회의 위기 같은 문제들은 나오지도 않았다.

단지 주인공인 작가가 오후에 동네를 싸돌아다니면서 생각하는 내용들의 나열이었다.

그래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고 엄청 기대를 했는데 ‘이런 것으로도 소설을 쓰는구나!’라는 허탈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북 리뷰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굉장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인공이 작가이니까 좀 특별한 삶을 보여줄 줄 알았는데 ‘작가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렇다! 제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배가 고프면 밥 먹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남들이 제일 흔하게 먹는 하얀 쌀밥이다.

피곤하고 늦게 귀가하면 라면 한 그릇 먹고 싶다고 한다.

별천지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사람은 사람이다.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이 봄에 냉이된장국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을 할 것이다.

유명한 작가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보는 것을 그도 보고 내가 듣는 것을 그도 듣고 내가 먹는 것을 그도 먹고 내가 고민하는 것을 그도 고민한다.

유명한 작가도 츄리닝 차림으로 동네 빵집을 드나드는 동네 사람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평범한 오후의 시간을 페터 한트케가 글로 옮겼는데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별한 오후가 된 것이다.

신기할 따름이다.

평범한 날과 특별한 날은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나는 것이다.

아니 평범한 날이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1년 365일이 모두 다 평범한 날이면서도 특별한 날이다.

그중의 한 날은 내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이 되었고 또 한 날은 내 결혼기념일이 되었고 또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날들이 되었다.

평범한 날인데 모두 다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소설 <율리시스>의 시간적 배경을 6월 16일 하루로 잡았다.

그냥 평범한 날이었는데 <율리시스>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는 그날을 ‘블룸스 데이’로 지킨다.

평범한 날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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