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흔들림은 꽃을 피우기 위한 몸부림이다

by 박은석

그는 가난한 상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상놈들에게는 글공부조차 쉽지 않았다.

아버지를 졸라 겨우 끈 떨어진 서생 한 명을 모시고 와서 몇 달 배웠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자 10대의 나이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 무리에 뛰어들었다.

잠시 동안 승승장구했지만 내분이 일어나서 조직이 와해되었고 그는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원수 같은 적군 하나를 죽인 것 때문에 재판을 받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형 집행을 앞두고 기적적으로 사형은 면했다.

이후 탈옥수를 도와주려다가 자신이 탈옥하게 되었다.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속이며 살았다.

때로는 스님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기독교인이 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결혼 직전에 파혼을 고하기도 했다.

나라 안에서 살기 힘들어 이웃나라로 피신 갔다.

그곳에 부인도 묻었고 딸도 묻었다.

못난 남편 못난 아비였다.

백범 김구 선생이다.




그는 러시아의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퇴역한 군인이었다.

재산도 넉넉했다.

하지만 폭동이 일어나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고 재산도 남지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비밀 조직을 만들어서 활동했지만 곧 발각되었다.

반체제인사로 분류되어 사형판결을 받았다.

이십대의 젊은 나이였기에 죽이기가 아까웠는지 사형 직전에 사면이 내려졌다.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말에서 30대 중반까지 갇혀 지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마음을 잡을 수 없어서 한 번 두 번 도박장을 찾아갔다가 노름꾼이 되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다.

재혼해서 예쁜 딸도 낳았다.

하지만 딸은 백일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쫘악 진열한다면 인생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산맥처럼 전개될 것이다.

좋았던 때도 있고 좋지 않았던 때도 있을 텐데 남에게 보이기 싫다고 해서 빼버릴 수는 없다.

지우개로 그 부분만 살짝 지울 수도 없다.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생기듯이 그 좋았던 시절과 좋지 않았던 시절이 서로 맞물리면서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든 것이다.

어려서부터 모범생으로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만 하다가 가는 사람은 없다.

삶의 어느 순간에 뒤를 돌아보면 후회할만한 일들이 높은 봉우리처럼 솟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공동체를 위해서 높은 뜻을 두고 살았던 사람은 가족들과의 소소한 정을 나누지 못한 미안함을 안고 있다.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출사표를 내던졌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내가 떠나면 그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미안한 일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은 평지에 놓인 신작로처럼 반듯한 길이 아니다.

산을 넘어가는 꼬불꼬불한 길이다.

산길은 똑바로 걸어갈 수가 없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휘어지고 꺾이면서 걸어야 한다.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봉우리도 만나고 계곡도 만난다.

순간순간의 산행은 별 볼 일 없는 것 같지만 전체를 모아 보면 장관의 연속이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

꽃도 싹이 나고 줄기를 뻗으면 바람에 휘청거린다.

그렇게 앞뒤좌우로 흔들리면서 어느새 꽃이 핀다.

접시꽃을 좋아했던 도종환 시인은 이 사실을 보고 노래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죽어서 검불이 되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쓸려간다.

살아 있으니까 흔들리는 것이다.

세상 모든 흔들림은 꽃을 피우기 위한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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