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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6. 2022

털어버릴 것은 털고 잊어버릴 것은 잊어라!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쓰일 때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꼭 뭐라고 하는 것 같다.

옷 뒤쪽에 뭔가 묻은 것 같아서 자꾸 쓸어내린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일이었는데 생각하면서 그 일이 점점 커진다.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도도한 성격인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자신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이 나도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남들과 비교하는 말이라도 나오면 더욱 민감해진다.

남들에게 뒤처진다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를 떠나고 싶다.

무조건 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나와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도 완벽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고 있는 완벽함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그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시 하고 또다시 하는 일이 있더라도 완벽하게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감정이 있고 이런 때가 있다.




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어느 관리의 죽음>에 나오는 주인공이 꼭 이런 사람이다.

회계 관리사인 이반 드미뜨리치 체르뱌꼬프는 분위기 좋은 날 분위기 좋은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다.

“엣취!”

재채기를 하고 나니까 속은 후련했는데 꼭 침이 튄 것 같았다.

마침 그때 앞에 앉은 사람이 머리를 닦으면 불편한 기색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까 통신부 장관이었다.

부서는 같지 않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조용히 앞으로 가서 귓속말을 했다.

“저, 장관님. 죄송한데 제가 재채기를 하다가 실수로 장관님께 침이 튄 것 같습니다.”

장관은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이반이 보기에 괜찮아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용서해주십시오.”라고 용서를 구했다.

장관은 괜찮으니까 오페라 보는 데 방해하지 말라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이반은 아까의 그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분명 장관이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얼굴 표정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전혀 괜찮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편지라도 쓸까 하다가 다음날 다시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기로 했다.

다음날 장관에게 찾아가서 

“장관님, 제가 어제 오페라하우스에서 재채기를 하다가 실수로 장관님께 침이 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장관은 짜증이 났다.

어제 괜찮다고 하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자리를 나서면서 이반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관이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장관을 찾아가서 사과를 했다.

그러자 장관은 정말 화가 나서 그를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반의 뱃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정말 짧은 소설인데 여운이 깊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람!’하고 야단을 치다가 이반 드미뜨리치 체르뱌꼬프가 꼭 내 모습인 것 같다.

나도 사소한 것에 너무 마음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그 사소한 것을 끌어안고 끙끙거리며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나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가?

털어버려도 되는 털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잊어버려도 되는데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리를 띄고 시간을 지내고 보면 알 수 있다.

별일 아니었는데 그 일 때문에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각은 사실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생각이라고 한다.

괜히 우리 마음속에서 생각의 판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털어버릴 것은 털어버리고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자 그게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 <어느 관리의 죽음>이 수록된 체호프 단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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