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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11. 2022

여유로움은 마음의 넉넉함에서 나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 시험을 치르고 발표를 기다릴 때였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시간에 친구들 열 명 정도가 커피숍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지원했던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잠깐 시간이 흐르고 “합격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애써 흥분을 감추며 친구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와서 “나, 합격했대.”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하면서 한마디 더 얹었다.

“이거 계산해라.”

하필 그런 자리에서 합격 소식을 전하다니 내 생각이 짧았다.

하지만 비싼 음료수 값을 계산하면서도 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기분이 좋았다.

‘까짓것 그게 얼마라고.’

엄청나게 좋은 일을 경험하면 자잘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어간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 아들도 어쩌다가 몇만 원 용돈이 생기면 자기가 크게 선심 쓴다며 식구들에게 커피도 사 주고 치킨도 주문한다.




오래전에 오성과 한음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오성 이항복의 집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이 감나무의 가지가 담장을 넘어서 옆집으로 뻗어갔다.

가을이 되어 감이 노랗게 잘 익자 옆집 하인들이 그 넘어온 가지에 붙어 있는 감을 따먹기도 하고 마당에 떨어진 감을 주워 먹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오성이 옆집 대감님을 찾아가서 다짜고짜 주먹으로 방문을 뚫고서 “이 방 안에 있는 주먹은 도대체 누구의 주먹입니까?”라고 여쭈었다.

대감은 “그야 너의 손이지.”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오성이 “그럼 저 감나무의 감은 누구의 감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오성의 진짜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대감은 오성의 지혜를 칭찬하면서 자기 하인들에게 따끔하게 야단치겠다고 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오성의 지혜를 강조하다 보니 다른 것들을 놓쳐버린 것 같다.

오성이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 비슷한 일들이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일어나는지 찾아보니까 실제로 많이 있었다.

오랫동안 살던 집인데 땅문서를 보니까 옆집 땅이었다는 일도 있고 내 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옆 사람 돈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알면 소유주는 길길이 난리를 친다.

손해배상을 요청하고 법정에서 보자고 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너그럽게 봐주기도 하고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한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염려하지 말고 살라며 아예 소유권을 넘겨주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할까?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의 차이이다.

여유롭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고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지 못한다.

소유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보면 장발장을 잡기 위해 지구 끝에까지 쫓아가려는 자베르 경감이 등장한다.

그는 분명 가진 것도 많고 명망도 있고 권세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그러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늘 초조하고 조급한 것 같다.

더 높은 자리, 더 센 힘, 더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 같다.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반면에 장발장은 도망자 신세이고 죄인이고 명예도 권세도 없다.

그러나 그는 늘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다.

그의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넉넉하면 나눠주는 게 아깝지가 않다.

하지만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면 한 개도 나눠줄 수 없다.

어린 이항복은 머리는 똑똑했지만 마음은 넉넉하지 못했다.

손해 보지 않는 데는 밝았지만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는 어두웠다.

그가 마음이 넉넉했다면 감을 한 소쿠리 따다가 옆집 사람들에게 건넸을 것이다.

여유로움은 마음의 넉넉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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