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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15. 2022

대단한 아빠들이었지만 항상 미안해했던 아빠들


뭘 좀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되었다.

아내는 그래도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책이라도 읽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없었다.

분만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간호사로부터 “건강하게 딸을 낳았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아, 버, 지가 되었다.

자라오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나에게 좋은 아버지는 아들과 손을 잡고 공중목욕탕에 가는 아버지, 딸과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아버지 정도였다.

내 아버지로부터 그런 경험을 물려받지 못한 나로서는 그게 그렇게나 부러웠다.

그 외에는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기는 아빠는 돈을 벌어오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의 대부분은 엄마가 담당하는 것이라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빠 노릇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

번쩍 안아 올리기도 하고 무등을 태우기도 하고 등에 업고 수영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아내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놀러가기도 했다.

애들은 금방 크니까 어렸을 때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둘러본 곳도 많다.

더 많이 가르쳐주고 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내 열정이 과했는지 아이들은 다음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아빠가 가르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역사적인 이야기가 없는 곳으로 가자고 아예 주문을 하기도 했다.

나는 정성껏 아빠 노릇을 하려고 했는데 그게 아이들과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한 인물들을 책에서 만났다.




정민 선생과 박동욱 선생이 편집한 <아버지의 편지>는 옛 선비들이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들을 소개한다.

이황 같은 큰 스승과 유성룡 같은 정치적인 입지가 대단한 인물도 있었고,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처럼 정치력보다 문화 예술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들도 있다.

초야에 묻혀 지냈던 인물도 있고 귀양길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에 처해진 인물도 있었다.

그들은 단 한마디만이라도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래서 붓을 들어 편지를 썼다.

자식에게 전하는 편지로서는 다산 정약용의 편지들을 놓칠 수가 없다.

한문희 선생이 엮은 <아버지의 편지>라는 책은 초등학생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한 편 한 편의 편지에 담았다.

편지로라도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려고 했던 다산 선생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세계적인 수학자인 김민형 선생이 쓴 <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너에게>라는 책은 옛 선비들의 편지와는 다른 충격을 주었다.

학술회나 연구 때문에 집을 떠나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틈이 나는 대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옛 선비들의 편지는 주로 ‘마음을 잘 잡고 공부해라, 생활을 절제해라, 집안을 잘 돌봐라, 나라를 생각해라’라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김민형 선생의 편지는 달랐다.

아들에게 아빠는 오늘 어디를 갔으며,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시콜콜하게 수다를 떠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 사소한 이야기 속에 역사와 문학과 음악과 미술 그리고 수학 이야기를 곁들여 놓았다.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편지를 읽으면 저절로 공부가 되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게 되며 역사를 알게 될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한 아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앞에 늘 미안해했던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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