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Apr 27. 2022

아직 마지막 단이 끝나지 않았다!


1940년 5월에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하였을 때 네덜란드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지만 1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점령당하였다.

네덜란드 국민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독일의 힘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당장은 나치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독일 내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던 나치는 네덜란드에서도 유대인들을 색출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나치의 눈을 피해서 숨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가 발각되는 날에는 네덜란드인들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나 독일의 눈치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인들 중에서도 나치에 협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인간애를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집을 개조해서 비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유대인들을 몰래 숨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시계수리공인 캐스퍼 텐 붐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자녀들과 힘을 모아서 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

그곳에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가 경계가 느슨해지면 그들을 네덜란드 밖으로 탈출시키는 일을 하였다.

사실 캐스퍼 텐 붐의 가족은 독실한 칼빈주의 기독교인들이었다.

유대교 신앙을 믿는 유대인들과는 종교적인 차이가 있어서 평상시에는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유대인들을 보호해주었고 탈출시켜주었다.

전시상황이기에 식량 배급제가 시행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먹을 것을 아끼면서 유대인들을 먹였다.

그렇게 그 가정의 도움을 입은 유대인들만 어림잡아 80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비밀 작전도 결국 들통이 났다.

나치 게슈타포에 의해 캐스퍼와 그의 두 딸인 벳시와 코리가 잡히고 말았다.




수용소에서 갇힌 지 10일째 되었을 때 캐스퍼는 목숨을 잃었다.

딸들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여자 수용소에 격리되어 있었다.

나치 간수들은 수감된 여성들을 검사한다며 옷을 벗기고 추행하기도 하였다.

벳시와 코리도 간수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였다.

곁에 있던 동료 수감원들이 한 명씩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코리는 점점 희망을 잃어갔다.

도저히 수용소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인데 언니 벳시는 그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때로는 조용한 소리로 찬송가도 불렀고 기도도 했다.

몰래 들여온 성경책을 동료 수감원들에게 읽어주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다.

코리는 그런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들은 정말 착하게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 결과로 얻은 게 수용소 생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 있을까? 이건 너무하잖아?”

그 말을 들은 언니 벳시가 대답했다.

“코리, 하나님께서 짜고 계신 양탄자의 맨 마지막 단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단다.” 그 말이 코리의 마음에 새겨졌다.

‘양탄자의 마지막 단이 짜지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다.’ ‘삶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내 삶을 모르는 것이다.’ 그 후 코리는 아직 자기 삶의 마지막 단이 끝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고 기적처럼 수용소에서 살아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 후에는 자신을 괴롭혔던 독일군들에게까지 찾아가서 용서를 베풀었고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연을 하고 다녔다.

그녀의 이야기는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코리의 언니 벳시는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아직 마지막 단이 끝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