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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9. 2022

첫인상이 끝인상이 되게 하지 말자!


사람의 첫인상이 끝인상이 되기도 한다.

단지 한번 얼굴을 봤을 뿐인데 그 사람이 너무 친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너무 싫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그 모습 자체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다.

아마 예전에 그와 비슷한 인상의 사람, 그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끼치는 사람을 만났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좋은 경험을 가졌다면 지금 만나는 그 사람이 마치 예전의 그 좋은 감정을 주고받은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만약 과거에 내가 안 좋은 경험을 가졌었다면 지금 만나는 그 사람도 싫어진다.

단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그 사람이 싫어진다.

선입견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그 사람과 급속히 친해질 수도 있고 선입견 때문에 그 사람과 완전히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사람이 쪼잔해서 그런 게 아니다.

첫인상에 좌우되는 게 사람이다.




첫인상은 굉장히 불편했던 사람인데 그 첫인상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사람과 긴 시간 동안 관계를 이어가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핏 봐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남편은 그저 평범한 동네 삼촌 이미지인데 부인은 연예인급 미모를 갖춘 부부 같은 경우이다.

어쩌다가 둘이 부부가 되었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끈질기게 사랑을 표현하다 보니 그 사랑에 넘어갔다고 한다.

첫인상과 달리 그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고 진솔한 사람이고 사랑과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이 달라지니까 그 사람이 좋아지고 자신에게 딱 맞는 사람이라고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결혼하게 됐다는 것이다.




백석의 시집 <사슴>에는 <고향>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언젠가 백석이 북관이라고 일컫던 함경도에서 경험한 일을 내용으로 한 시이다.

그때 몸이 심하게 아파서 의원을 불렀는데 그를 찾아온 의원은 돌부처 같은 얼굴이었고 관운장처럼 수염이 길었다.

새끼손톱이 길게 나 있었는데 마치 먼 옛날 어느 나라의 신선처럼 보였다.

말없이 한참 맥을 짚었는데 백석은 그 무뚝뚝한 의원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의원이 갑자기 고향이 어디냐고 묻길래 평안도 정주라고 했다.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라고 하길래 이번에는 백석이 의원에게 그 아무개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의원은 자기에게는 막역한 친구라고 했다.

그러자 백석은 그 아무개씨는 아버지의 친구분으로서 자신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냐고 하면서 의원이 다시 맥을 짚었는데 그 손길 속에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분도 있었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첫인상과 끝인상이 너무나 달랐다.

첫인상은 도무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하지만 고향 이야기를 하는 중에 고향 아저씨라는 연결고리가 생겼다.

그 의원이 아버지의 친구의 친구니까 아버지의 친구이고 또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여겨진 것이다.

갑자기 친해졌다.

의원의 손길이 아버지의 손길처럼 여겨졌다.

그 손에는 고향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었다.

첫인상이 달라진 이유는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어보면 듣게 되고 들으면 알게 된다.

첫인상이 맘에 안 들어서 여지껏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물어는 봤는가?

알아는 봤는가?

혹시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은 것은 아닌가?

첫인상이 맘에 안 든다고 함부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내 첫인상도 누군가에게는 엄청 안 좋을 수 있을 것이다.

첫인상이 끝인상이 되게 하지는 말자!


-------------


<고향(故鄕)>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나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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