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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29. 2022

살아 있다면 생각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한창 일어날 때 전 세계의 인구는 10억 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세기가 시작되고서 20억 명을 넘어서더니 1960년대에는 30억 명, 1970년대에는 40억 명, 1980년대 말에는 50억 명, 그리고 2000년대에 와서는 60억 명, 70억 명으로 계속 기록을 갈아치우고 지금은 80억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200년 사이에 8배의 인구가 증가한 것이다.

이 인구를 다 품고 살아가는 지구가 대단하게 여겨진다.

인류가 생겨난 후 18세기까지 줄곧 동시대에 10억 명이 안 되는 숫자가 이 지구 위에서 살았었다.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열매를 따먹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살림살이는 늘 무엇인가 부족했다.

먹을 게 부족했고 입고 쓸 것들도 부족했다.

땅덩어리는 넓었지만 이 넓은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너무 적었다.

사람들에게 가난과 배고픔은 오래된 친구였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면 식구라도 많아야 했다.

일손이 많은 집이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사냥을 나가서 잃어버리는 식구도 있었고 전쟁이 나서 잃어버리는 식구도 있었고 병에 걸려 일찍 떠나는 식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식구들이 생기니까 그것까지 감안해서 더 많이 낳으려고 했다.

잠시라도 놀고 앉아 있으면 그만큼 소득도 적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일을 해야 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역할을 분담하는 게 좋았다.

누구는 추수를 하고 누구는 추수한 것을 지키고 누구는 추수한 것을 가지고 요리하도록 했다.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일이 있었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자기 일은 자기가 해냈다.

그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했다.

만약 한 사람이 아프거나 죽거나 해서 그 자리가 비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다 힘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일은 아버지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아버지는 그 일을 아들들에게 가르쳤다.

할머니의 일은 어머니에게 그리고 딸들에게로 전해졌다.

모르는 일이 발생하면 자식은 부모에게 물어봤고 부모는 또 그들의 부모에게 물어봤다.

그렇게 물어보고 대답하는 가운데 저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이 모여 지혜가 되고 지식이 되었다.

잠시라도 생각의 끈을 놓쳐버리면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을 안 하면 살 수 없는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200년 전에 이 지구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밭에 나가 땀을 흘리지 않아도, 숲에 들어가 맹수와 싸우지 않아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 되었다.

일을 하면 돈을 받게 되고 그 돈을 가지고 먹을 것을 사 먹으면 되었다.

더 이상 머리 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다.




처음엔 신기한 물건들을 만져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복잡하게 머리 쓰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나 좋았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을 안 하면 안 된다.

생각을 안 하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그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생각을 안 하고 산 지가 꽤 되어서 이제는 생각하는 것이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괜히 머리 아프게 생각하는 것보다 남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면 될 것 같았다.

그것도 누군가의 생각이니까 그 생각을 자기 것으로 삼자고 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발상이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넘긴 파우스트처럼 생각하기를 넘겨버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생각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죽는다.

살아 있다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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