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닥친 일이 행인지 불행인지는 중요치 않다

by 박은석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냈다.

군입대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수선했었기 때문이다.

딴에는 집에 머물면서 집안을 안정시키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두 살짜리가 뭘 한다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돈을 벌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꼽아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고작해야 1년인데 어떤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애매했고 아직 군 미필이니까 받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알바를 뛸만한 일자리도 흔치 않았다.

다행히도 몸뚱아리 하나는 건강했다.

그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까 새벽에는 신문배달, 낮에는 건축 현장에서의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와 모래를 날랐다.

그리고 남아도는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중학생 과외도 했다.

어찌어찌 돈은 벌었는데 내 인생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답답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애매한 시기에 놈팡이처럼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 같았다.

아직 끝맺지 못한 공부가 있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도서관에 갔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내가 해야 할 공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문열의 <삼국지> 같은 책이나 들춰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하나씩 군입대를 할 때마다 조촐한 송별회도 열어주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토요일 저녁에는 자기와 함께 특별히 곳에 가자고 했다.

친구는 벌써 오래전부터 그곳에 드나들고 있었다.

친구가 가자니까 안 갈 수도 없었다.

내 마음은 솔직히 가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된 곳은 바로 보육원이었다.

보육원에 대해서는 그전까지는 말로만 들었을 뿐 관심은 전혀 없었다.

내 인생과는 전혀 역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색하게 첫발을 디딘 보육원 봉사는 내가 다시 복학할 때까지 1년 동안 이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내게 무슨 자격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친구가 도움을 받고 있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친구를 데리고 그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고 나도 엮여서 끼어들게 된 것이다.

기타를 치면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찬송가도 부르고 또 선생님이 기도도 해주고 그런 시간이었다.

보육원 아이들 입장에서는 젊은 선생님들이 와서 자기들과 놀아주는 시간 같았을 것이다.

그곳에 가고 나서야 나는 그곳의 아이들을 비로소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그전까지 가졌던 생각은 그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고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도 분명 있지만 어떤 사정 때문에 그곳에 맡겨진 아이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내가 보기에는 그들 모두 안쓰러웠다.

나도 얼마 전에 아버지를 여의어서 많이 아팠지만 내 아픔은 그 아이들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




어느 날인가는 그곳에서 이제 갓 두세 살이나 됐을 아이를 만났다.

그 주간에 맡겨진 아이라고 했다.

어느 모로 보나 귀염둥이 그 자체였는데 도대체 이 아이와 그의 부모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한 주간이 흘러서 다시 보육원에 갔을 때 이번에는 그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어디에 갔냐고 물어봤는데 그 주간에 입양되었다고 했다.

일주일, 또 일주일 사이에 아이는 세상이 바뀌고 또 바뀌는 엄청난 일들을 겪었던 것이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1년 동안 내가 겪은 일들도 그랬다.

내가 선택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휴학한 것도 아니다.

신문배달도, 노가다도, 과외도, 보육원 봉사도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선택당한 것이다.

그게 행인지 불행인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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